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탤런트 배우 이경진 나이 프로필 남편 결혼 자녀 가족 어머니 언니 고향 출연 드라마

by 얼굴은나의무기 2024. 6. 24.

 

 

탤런트 겸 배우 이경진은 1974년 MBC 공채 탤런트 7기로 데뷔하여 1970년부터 1980년대 시절 국내 최정상의 인기 여배우 중 한 명으로 활약하였다. 당시 정윤희, 장미희, 유지인과 등과 함께 브라운관 여신으로 불렸으며, 이후 <종이학>, <아름다운 날들>, <동의보감>, <제3공화국> 등 흥행을 기록한 대표작에서 명품 연기를 선보였다. 하지만 이경진은 1986년 미국에서 치과의사 남편과 결혼하였으나, 당일 피로연에서 남편과 파경을 선언한 뒤 한국으로 이내 귀국하였다.

 

 

 

 

이경진 프로필

 

나이 : 1956년 10월 2일 출생. 67세

고향 : 서울특별시

가족 : 어머니(별세), 첫째 언니(사망), 둘째 언니, 여동생

결혼 : 남편(결혼식 당일 파혼), 자녀 X

학력 : 덕성여자중학교 졸업 - 서울여자고등학교 졸업 - 호서대학교 골프학 학사

데뷔 : 1975년 MBC 공채 탤런트 7기

소속사 : 다홍엔터테인먼트

종교 : 개신교

 

 

 

 

이경진 배우는 1970년대 브라운, CF퀸으로 1980년대에는 충무로 트로이카 정윤희, 장미희, 유지인과 버금가는 톱스타 격으로, 브라운관에서는 원미경 등과 KBS의 차세대 꽃이라 불리며 많은 남성 중년 팬들에게 사랑을 얻었다. 특히 시대극 드라마인 <제3공화국>, <삼김시대>, <코리아게이트>에서 모두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부인인 박영옥 여사 역을 맡아 출연하였으며 1990년대 들어서는 <몽실언니>, <그대 그리고 나> 등 드라마에서 주로 주인공들의 엄마 역할로 출연해 '국민 엄마' 칭호를 얻었다.

 

 

 

 

미국에서 전 남편과 결혼식까지 치뤘으나 당일 피로연에서 헤어지게 되어 법적으로는 혼인신고를 하지 않아 미혼인 이경진이다. 1986년 재미동포 치과의사와 연애 후 만남 끝에 결혼식을 올렸으나 피로연을 하던 중 웨딩드레스를 입은 채로 파혼선언을 하고 얼마 후 한국으로 돌아왔다. 파혼한 이유에 대해서는 상대 남편이 과거 약혼했다가 파혼한 사실이 확인되어 결별했다고 언급하였으며, 이후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연기자로 일에 몰두를 하다 살다보니 결혼시기를 놓쳤다고 밝힌 바 있다.

 

 

 

 

이경진의 안타까운 가족사는 방송을 통해 사연을 직접 공개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내기도 했다. 이경진은 큰언니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뒤 어머니가 충격으로 6개월 만에 돌아가셨고, 이렇게 1년 사이에 언니에 이어 어머니까지 두 사람 장례를 치루게 된 것이다. 너무도 가까운 핏줄이 그렇게 되지 실감이 안되었는데, 특히 어머니 경우 영원히 살 것 같았는데 그게 가장 충격이었다고 밝혔다. 그렇게 언니와 어머니 장례를 치르고 몸을 추스리던 이경진은 자신도 유방암 진단까지 받게 되면서 세상의 고통을 혼자 짊어진 기분을 느끼며 하루하루를 고통속에서 보낼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다행히 유방암 수술을 받은 후 재발하지 않고 건강을 회복하였고, 이렇게 건강을 다시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 언니와 어머니가 지켜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울컥하기도 했다.

 

 

 

 

한편 이경진은 미혼으로 살아가면서 두 조카의 의대 등록금을 지원해 주기도 했는데, 이경진의 어머니가 학구열이 매우 높은 편이였고, 거기에 아들을 낳지 못한 한이 있어 쌍둥이 조카들이 미국 의대에 붙었을 때 어머니의 한을 조금이라도 풀어드리고 싶은 나머지 대신 학비를 대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경진은 40대 후반까지 어머니와 함께 지내면서 그때까지도 어머니가 모든 걸 다 해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어머니와 떨어져서 못 살 줄 알았는데 너무 잘 사니까 나중에 섭섭해 하셨다고 하며, 어머니와 더 일찍 떨어졌으면 여러가지로 잘 했을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이렇듯 어머니에 대한 감사함 때문에 모든 가족들과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고 한다.

 

 

 

 

과거 이경진의 아버지는 남아 선호 사상이 매우 강했다고한다. 아버지는 계속 딸만 얻게 되자 가족을 버리고 떠났다고 하며, 당시 35세의 젊은 나이였던 홀어머니가 네 딸 모두를 책임감 있게 키웠다고 한다. 그래서 아버지에 대한 분노와 원망이 어릴 때부터 컸으며, 15년 뒤 자신이 배우로 성공한 뒤 우연히 방송국 입구에서 아버지를 만났을 때도 "아들 낳고 잘 살고 계시나요?"라고 냉정히 차갑게 말해고는 자리를 떴다고 한다. 이후로도 아버지와는 연을 끊고 절대 안만났다고 하며, 2020년 즈음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일부러 입관식에 참석을 하지 않았다. 이 같은 행보를 보면 유년시절부터 학창시절, 그리고 성인이 될 때까지 아버지를 향한 분노가 매우 컸었던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여담으로 전두환 전 대통령인 제5공화국 시절인 1982년 프로야구 출범을 하였는데, 출범 첫 경기 당시 이경진의 최초 연예인 시구자였다. 시구 장소는 1982년 올스타전 1차전 부산 구덕 야구장에서 시구를 펼쳤으며, 이후 세월이 흘러 40년 후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파크에서 두 번째 시구를 했는데 당시 시타는 가수 혜은이였다. 친한 동료 배우중에서는 고두심과 박원숙, 김창숙 등이 있으며, 여동생의 남편인 제부가 원래 자신에게 구혼했다 거정당했는데 이후 '꿩대신 닭'이라는 마음으로 이경진의 여동생에게 접근하여 결혼하게 되었다고 과거 신문에서 사연이 공개되기도 했다.

 

 

 

 

출연 드라마

 

TV문학관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대명, 세자매, 행복의 계단, 어머님 날 낳으시고, 산유화, 불타는 바다, 적도전선, 세월, 거리의 악사, 지포리에서 생긴 일, 조명하, 절반의 실패, 몽실 언니, 동의보감, 매혹, 미스터리 멜로 금요일의 여인, 제3공화국, 사랑의 향기, 사랑이 꽃피는 교실, 칠갑산, 코리아게이트, 달콤한 인생, 아빠는 시장님, 그대 그리고 나, 삼김시대, 종이학, 파도, 이브의 모든 것, 멋진 친구들, 아름다운 날들, 여우와 솜사탕, 백조의 호수, 불새, 봄날, 꽃보다 여자, 이별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별난여자 별난남자, 달자의 봄, 사랑에 미치다, 경성스캔들, 온에어, 강적들, 돌아온 뚝배기, 신데렐라 맨, 여자를 몰라, 내게 거짓말을 해봐, 내일이 오면, 지운수대통, 산 너머 남촌에는 2, 금 나와라 뚝딱, 고양이는 있다, 다 잘될 거야, 워킹 맘 육아 대디, 파도야 파도야, 조선생존기, 아모르 파티 사랑하라 지금, 삼남매가 용감하게

 

 

 

 

출연 영화

 

너를 잊지 않을거야, 완전 소중한 사랑, 오늘의 연애, 비밀, 아일라, 잠, 가문의 영광 리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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