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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조영남 나이 프로필 사망 부인 윤여정 딸 가족 고향 학력 종교 노래모음

by 얼굴은나의무기 2024. 6. 16.

 

 

가수 조영남은 1968년 '딜라일라'로 데뷔하였고, 이후 '화개장터', '물레방아 인생' 등 여러 히트곡을 남겼다. 그리고 가수 활동 뿐만 아닌 화가, 배우, MC, 라디오 DJ 등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면서 원조 만능엔터테이너로 불리고 있다. 한편 지난 그림대작 이슈로 인해 소송 진행 및 여론 악화로 방송활동이 줄어들면서 방송 활동이 이전보다 급격히 감소하였으며, 최근에는 조금씩 방송에 출연하면서 근황 소식을 전하고 있다. 그리고 한때 조영남 사망, 건강 악화설 등의 루머들이 돌았으나 지난 2월 <불후의 명곡>에 전설로 등장해 건강이상설, 사망설 등 루머들을 일축시켰다.

 

 

 

 

조영남 프로필

 

나이 : 1945년 5월 13일 출생. 79세(음력)

고향 : 황해북도 평산군

가족 : 8남 1녀 중 7남, 동생 조영수(성악가 겸 교수), 부인 윤여정(이혼) 백은실(이혼), 자녀 2남 1녀(두 아들은 윤여정 소생이며 딸은 백은실과 재혼 후 입양)

학력 : 삽교초등학교 졸업 - 삽교중학교 졸업 - 강문고등학교 졸업 - 한양대학교 문리과대학 성악 중퇴 -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성악 명예학사 - 트리니티 신학대학교 신학 학사

신체 : 167센치, O형

군대 : 육군본부 병장 만기 제대

데뷔 : 1968년 노래 '딜라일라'

종교 : 개신교

 

 

 

 

조영남은 중학교를 마친 후 서울로 올라와 용문고등학교를 나온 뒤 한양대 성악과에 진학했다. 그러다 1963년 한양대학교를 자퇴하였는데 자퇴한 이유는 2학년이 됐을 때 신입생 여자 아이들 중에 정말 예쁜 후배가 들어왔었고, 그 여자가 한양대학교에 오는 걸 매일 몰래 봤다고 한다. 그리고 그 후배가 입학한 후로 온 정신은 '그 아이와 어떻게 이야기를 할까'였다고 하며, 신입생 환영회에서 내가 사회를 보는데 그 아이를 계속 의식했다고 하며, 이후 하지만 알고보니 이미 약혼자가 있는 상태였던 것이었다. 학교에서 그 여자와 내가 데이트 한다는 소문이 났고, 약혼자가 조영남에게 찾아가 횡포를 놓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렇게 학교에 온 소문이 퍼지면서 다시 공부하여 서울대에 새로 진학하였고, 여자 또한 그 이후 약혼자와 파혼을 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대학교 등록금과 학비를 벌기 위해서 밤무대를 다니다가 주한민군이 운용하는 쇼룸에서 팝송을 부르며 이후 성악을 관두고 상업가수가 수입이 좋은 것을 이유로 상업가수로 전한. 1968년 '딜라일라'라는 번안곡으로 데뷔하게 되었다. 이 '딜라일라'로 방송에 데뷔한 조영남은 당시에 파격적인 퍼포먼스로 데뷔하자마자 상당한 주목을 끌면서 인기가수로 올라섰다. 본인도 자신의 저서나 방송에서 말하기를 무명시절이 거의 없었던 펀이라고 밝히기도 했으며, 이후 TV가 현재처럼 보편화가 되기 이전이었음에도 TV에 자주 나와 TV를 자주 보지 못하던 서민들도 가수 조영남은 대부분 아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실제 지금의 젊은 층은 조영남의 히트곡이라고 하면 '화개장터' 정도만 알고 있지만, 조영남의 리즈 시절과 전성기 시절을 함께 보낸 세대들은 1970년대 유명하던 대중 클래식 가수였다고 기억하고 있다. 1970년 LP로만 음반을 내던 시절에 7만 5천장을 팔았는데, 1990년 기준이면 밀리언 셀러 못지 않은 엄청난 판매량을 기록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스타가 되어 돈을 많이 번 뒤에는 본인이 한때의 굶주림에 상업가수로 전향한 것이 후회스러웠는지 동생 조영수가 성악가가 되길 원하자 아낌없이 금전적인 지원을 해주었다고 한다.

 

 

 

 

1971년 조영남은 군복무 도중에 알게 되 배우 윤여정과 결혼 후 빌리 그레이엄 목사가 주도한 여의도 평회집회에서 성악 쪽 담당자들을 수소문하고 직접 지취한 후 빌리 그레이엄의 추천으로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신학 학사를 수료한 뒤 귀국하였다. 가수로 돌아오면서 활동도 활발히 펼쳤지만 집과는 거리거 멀어지게 되었고, 끝내 아내 윤여정과도 갈라서게 되었다. 스스로도 윤여정과 이혼했을 때를 매우 반성하지만 진심으로 윤여정을 위한다면 그녀의 언급조차 하지 말아야 했다는 여론이 상당하다.

 

 

 

 

윤여정과 이혼 이후에는 방송에 인생을 올인하듯 왕성한 방송활동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체험 삶의 현장>에서 MC로 활약하면서 체험&다큐 형태의 방송을 주로 이끌었으며, 2006년에는 <지금은 라디오 시대> DJ를 맡아 출연했다. 보조 MC로서도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었는데, 미국에서 MC로 성공한 자니 윤을 불러와서 그를 메인 MC로 한 <자니윤 쇼>에 조영남이 보조 MC를 맡았는데 두 사람의 호흡이 너무 좋아서 큰 인기를 얻었다. 한편 가수 활동은 공식적인 은퇴 앨범을 발매한 만큼 사실상 은퇴를 한 상황이나, 프로그램의 PD들이 찾아와 사정을 하면 한두 곡 정도는 부르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러나 은퇴한 만큼 개런티 부분은 안받거나 기부한다는 조건을 걸기도 했다.

 

 

 

 

한편 조영남은 국내 연예인 중에서 상당히 재산가로 알려져 있다. 현재 거주하고 있는 집은 서울 청담동의 고급빌라는 연예인이 살고 잇는 모든 집들 중에서 제일 바싼 축에 속하며, 공시지가만 50억원 이상, 실거래가는 100억원이 훌쩍 넘는다고 한다. 사실 이 빌라는 조영남이 아주 오래전에 구입한 것으로, 구입 당시엔 지금처럼 고가가 아니였으나, 재건축만 2번을 거듭하다 보니 주변 시세와 맞물려 건물 가격이 지금처럼 고가로 폭등하게 된 것. 그렇다보니 너무 비싸 팔리지도 않는다고 한다.

 

 

 

은퇴 이후에는 화가로 활동하고 있는데, 주로 그리는 작품은 화투 그림을 크게 그리는 작품들이다. 아무튼 이 화가 타이틀로 개인 전시회도 여러차례 열었으며, KBS 시사교양 프로그램 명작 스캔들에서 미학 칼럼니스트 기믹으로 출연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얼마 뒤 그림대작 논란이 불거지면서 조영남을 향한 대중들의 싸늘한 시선이 이어졌고, 소송 관련 진행과 여론의 악화로 인해 방송 활동이 뜸해지게 되었다.

 

 

조영남 노래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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