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Ent

박칼린 프로필 나이 결혼 남편 고향 국적 언니 부모 가족 최재림 학력 자녀

by 얼굴은나의무기 2024. 6. 16.

 

 

박칼린은 과거 <남자의 자격 - 하모니 편> 방송에 출연해 시청자들과 대중들에게 얼굴을 알렸으며 이후 연극배우, 보컬 트레이너, 음대 교수, 뮤지컬 연출 등 공연계에서 활발한 활동을 해온 음악감독이다. 그녀는 미국 캘리포니아 칼아츠에 진학해 첼로를 전공했으며, 그러던 중 돌연 1991년 국악을 배우기 위해 한국으로 건너와 서울대학교 국악 대학원에 입학해 명창 고 박동진에게 판소리를 사사받게 되었다. 이후 1990년 초반 대한민국 1호 창작 뮤지컬인 <명성황후>의 음악 감독을 맡게 됐고, 이어 뮤지컬 <렌트>, <시카고>, <맘마미아> 등에서 음악감독을 맡으며 국내 뮤지컬 음악감독 1호라는 타이틀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대중들에게는 18살 연하의 뮤지컬배우 최재림과 열애설로 이름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박칼린 프로필

 

나이 : 1967년 5월 1일 출생. 57세

본명 : 칼린 수 팍

한국명 : 박영미(법적 이름이 아닌 1989년 MBC 대학가요제 출전 당시 사용한 이름)

고향 :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

국적 : 미국

결혼 : 미혼 싱글(남편, 자녀 X)

가족 : 아버지, 어머니, 언니 2

학력 : 초량초등학교 편입 - 경남여자고등학교 편입 - 캘리포니아 예술학교 첼로 전공 학사 - 서울대학교 대학원 국악작곡 석사

신체 : 키 172센치

 

 

 

 

박칼린의 친할아버지는 전라도 출신이며, 아버지 박근실은 부산광역시 출신으로 알려져 있으며, 6.25 전쟁 때문에 온 나라가 쑥대밭이 된 1950년대에 미국에 있는 대학으로 유학을 떠난 유복한 집안의 엘리트 학생이었다. 대학 재학 중, 5살 때 미국으로 이주한 리투아니아계 이민자 가정의 박칼린 어머니 아이린을 만났다고 한다. <무릎팍도사> 출연 당시 박칼린이 말하길 아버지가 동양인이지만 키가 190센치인 만큼 거구이어서 학교 학생 사이에서 유독 눈에 띄었으며, 어머니가 아버지를 놀리기 윟해 아버지 앞에서 노래한 아리랑을 계기로 인연이 생겼다고 했다. 조국이 전쟁을 겪었꼬, 둘 다 해외로 이주한 이방인이라는 공통점들이 서로에게 통했다고 한다.

 

 

 

 

이렇게 서로 부모님이 만나 낳은 세 자매 중에 가장 막내로 태어난 박칼린은 미국에서 태어나고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3살 때 아버지를 따라 부산으로 온 가족이 이사왔고, 10세 때까지 부산에서 살았으며, 다시 영어를 배우기 위해 초등학교 4학년 시절 미국으로 이주하여 로스앤젤레스 헐리웃 지역에서 성장하였다. 중간에 고등학교 때 1년 동안 부산 경남여자고등학교를 다니기도 했으며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고등학교와 캘리포니아 예술대학 첼리 전공으로 졸업을 마쳤다. 이후 다시 한국으로 와 서울대학교 대학원 음악과에서 국악 작곡을 전공하였고, 이후로 계속 한국에서 거주하고 있다.

 

 

 

 

미국과 한국을 계속 오가며 성장기, 학창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영어와 한국어 모두 능통하게 구사하지만 아무래도 성장기 시절에 대부분을 미국에서 보냈기 때문에 한국어 발음이 약간 불명확할 때가 있다. 한편 부산 지역에서 많은 세월을 보냈기에 부산 사투리와 부산 지역의 문화를 잘 이해하고 있다. 원래는 부산 사투리를 사용했었는데 한국에서 연기를 하다 보니 표준말을 하게 되었다고 하며, 판소리 명창인 박동진의 제자였는데 실제로 박동진이 그녀를 자신의 판소리 직계 전수자로 삼고 싶었으나 박칼린이 외국인이였기 때문에 성사되지 못했다. 이에 박칼린은 매우 상심과 서운함이 컸다고 알려져 있으며, 하지만 추후에 "네가 외국인인 게 무슨 상관인지 모르겠다"라는 박동진의 말 한마디를 듣고선 마음이 풀렸다고 한다. 훗날 <무릎팍도사>에 출연한 박칼린은 만약 박동진의 전수자가 되었다면 자신은 판소리의 길로 아주 깊이 빠져들었을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박칼린의 회고록을 보면 박동진은 박칼린을 처음 보았을 때 "아따 저 양년 참 한국말 잘하네잉"이라고 했다고 한다. 당시 서울대학교 국악과에서 국악을 전공 중이던 박칼린은 하와이에서 열린 국악 공연에 국악계 인사들이 통역 자격으로 나섰었는데, 박칼린이 국악을 전공했다는 것도 알지 못했던 박동진이 불현듯 "자네는 소리를 해야 쓰겄네"라며 그녀를 제자로 삼았다고 한다. 즉 박칼린은 클래식, 국악 모두를 전공했으며 미국과 한국 모두를 오가면서 성장하였다. 방송과 저서, 인터뷰에서 미국 로스앤젤레스, 리투아니아, 부산에 대해 이야기 할 때 세 곳 모두를 한번씩 돌아가면서 고향이라고 말해 세 나라의 문화적 배경을 모두 경험하며 자란 제3문화인이다.

 

 

 

 

1989년 13회 MBC 대학가요제에 미주 대표로 참가한 박칼린은 자작곡 '사막의 비'로 본선 무대에 진출을 했지만 입상하는데는 실패하였다. 연극배우로 잠시 활동한 경력을 바탕으로 연기력이 어느정도 되는 편이며, 오래전, 한국 드라마에서 약간의 개그 캐릭터로 등장하기도 했다. 현재 그녀의 가장 대표적인 활동 분야는 뮤지컬 음악감독이며, 대한민국 1호 창작 뮤지컬로 유명한 <명성황후>의 음악감독을 맡은 것이 커리어의 첫 시작이었다. 즉 한국 뮤지컬 음악감독들 중에서도 1세대로 불리우며, 뮤지컬 <명상황후>의 작사 작곡을 했던 양인자, 김희갑과의 인연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특히 김희갑은 박칼린에게 노발대발하며 '당장 나가라'라고 소리지르기도 했다고 한다. 그리고 본인 피셜에 의하면, 절대 나가지 않았다고 한다.

 

 

 

 

주로 신시컴퍼니에서 <렌트>, <시카고> 등 이름만 대면 유명한 대작 뮤지컬 작품의 음악감독을 맡았으며, 특히 <렌트>의 경우 한국 초연부터 2011년 공연까지 모든 공연의 음악감독직을, 2011년 공연에서는 연출까지 맡았다. 무엇보다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진 계기는 <남자의 자격>에서 합창단을 맡게 되면서부터 인지도가 급격히 올라갔고, 방송 활동도 이 때부터 잦아지기 시작했다. <남자의 자격> 방영 당시 최고 화제의 인물로 선정되었고, 특히 '훌륭한 리더십'의 대표하는 인물로 꼬히면서 여러 방송과 광고 출연이 부쩍 늘어났다.

 

 

 

 

2011년, 2012년 <코리아 갓 탤런트>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심사위원을 맡아 출연했는데, 당시 심사평이 상당히 냉정하고 냉혹한 모습을 보여주며 웬만한 실력의 참가자들은 냉정하게 불합격 판정을 내려 화제가 되었다. 이후 영화 <고지전> 마지막 부분에서 병사들의 합창 부분을 지도하기도 했으며, 2014 인천 장애인 아시안 게임의 개막식과 폐막식 연출 감독, 마스터 쇼의 연출을 맡았다. 2018년에는 5월 22일 개막한 뮤지컬 <시카고>에서 벨마 켈리 역을 직접 맡아 출연하였는데, 항상 음악감독으로서도 참여하고 활동하고 있기에 오디션 제의를 처음 받았을 때는 의아했다고 한다.

 

 

 

 

여담으로는 조승우, 박준면, 김선영, 정선아 그리고 열애설 주인공인 최재림 등을 포함해 한국 뮤지컬계에서 매우 중요한 배우들을 발굴했다. 그리고 박칼린의 언니 켈리 수 박은 미국에서 여성을 청부살해한 혐의를 받고 구속되었으며, 각종 재판과 여러 논란 긑에 2013년 6월 미국 법원에서 증거 불충분과 수 백 억원대의 보석금을 내면서 무죄 판결을 받고 풀려났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