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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 대통령 나이 사망 부인 묘지 묘소 아들 딸 가족 자녀 고향 종교

by 얼굴은나의무기 2024. 5.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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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 대통령 프로필

 

출생 : 1932년 12월 4일

사망 : 2021년 10월 26일. 향년 나이 88세

고향 : 대구광역시 동구 용진길 172

묘소 :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동화경모공원(국가보존묘지로 지정)

가족 : 부인 김옥숙, 자녀 딸 노소영 아들 노재헌

학력 : 공산공립국민학교 졸업 - 대구공립공업중학교 전학 - 경북고등학교 졸업 - 육군사관학교 11기

약력 : 육군사관학교 11기 입교 - 육군사관학교 졸업 및 육군 소위 임관 - 제5보병사단 소대장 - 육군보병학교 교육연대 구대장 - 육군보병학교 수료 -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 포트브래그 특수전학교, 심리전학교 수료 - 대위 진급, 군사정보대학 영어번역담당 장교 -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ROTC 교관 - 국군방첩부대 정보처 정보과장 및 방첩과장 - 중령 진급, 베트남 전쟁 파병, 수도기계화보병사단 1연대 3대대장 - 육군대학 수료, 수도경비사단 대대장 - 육군대학 수료, 수도경비사단 대대장, 대령 진급, 육군참모총장 수석부관 장교 - 보병 연대장 - 준장 진급, 공수특전여단장 - 청와대 대통령경호실 행정차장보 - 소장 진급, 대통령경호실 작전차장보 - 제9보병사단장 - 수도경비사령관 - 국가보위입법회의 비상대책위원 - 중장 진급, 국군보안사령관 - 대장 진급 및 예비역 대장 전역, 민주정의당 입당, 당무위원 - 초대 정무제2장관, 대통령 외교안보 담당 특보 - 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원 - 대통령 특사 - 남북한고위회담 수석대표 - 초대 체육부장관 - 제41대 내무부장관 - 1988 서울 울림픽 조직위원장 - 대한체육회 회장 - 제12대 국회의원 - 민주정의당 총재권한대행 - 민주정의당 총재 - 제13대 대통령 선거 당선 - 민주정의당 총재 연임 - 제13대 대한민국 대통령 - 무궁화대훈장 서훈 - 민주자유당 최고위원 - 민주자유당 총재 - 민주자유당 총재 연임 - 민주자유당 명예총재 - 대한민국 대통령 퇴임 - 백범기념관 건립위원회 고문

 

 

 

 

박정희 정부 시절에 당시 전두환과 같이 대한민국 육군 내 사조직 '하나회'를 결성하는데 주된 기여를 하였다. 박정희 대통령이 10.26 사건으로 별세하였고, 이후 국무총리 최규하가 대통령 대행자리에 오르자 전두환을 따라 12.12 군사반란 쿠테타를 주도하였으며 정국을 장악한 전두환이 집권한 뒤에는 군 전역을 하고 정계에 입문하였다. 6월 항쟁 직후 6.29 선언을 발표하여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받아들였고, 신헌법에 따라 국민 직선제로 치러진 첫 대선인 13대 대통령 선거에 민주정의당 후보로 출마하여 '보통사람들의 위대한 시대'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며 당선되어 1988년 2월 25일 전두환의 후임으로 13대 대통령으로 취임하였다.

 

 

 

 

이렇게 제6공화국을 출범시긴 노태우 대통령은 5공 청산론을 받아들여 군부 출신 인사들을 대거 정리하기 시작했고, 정치 활동이 금지된 재야인사들을 다시 복권시키면서 언론의 자유를 확대시키며 중도통합에 적극적으로 지시하였다. 세계적인 데탕트 분위기에 발맞추어 복방정책을 펼치고, 남북기본 합의서를 체결하여 한반도 비핵화를 선언하기도 했다. 또한 분한과 UN에 동시 가입하는 등 제6공화국 모든 정부에서 추진할 대북정책의 기초를 수립하였고, 1988 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열었다. 대통령 각하라는 표현을 처음으로 사용하지 않은 대통령인데, 이전까지는 대통령 취임식과 같은 국가 행사를 비롯해 언론에서 대통령의 호칭을 각하로 사용하였다. 이승만, 박정희, 최규하, 전두환 역대 대통령 모두 각하 호칭을 사용한 대통령이며, 다만 김영삼 대통령 시절까지는 청와대 내각에서는 각하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리고 김대중 대통령이 들어선 이후에는 각하 표현은 완전히 사라지며 내각에서도 대통령 호칭으로 사용했다.

 

 

 

 

대통령 퇴임 후에는 12.12 군사반란 및 5.17 내란을 주도한 혐의로 인해 1995년 전두환 전 대통령과 나란히 구속되었다. 그리고 재판 당시 전두환과 다정하게 손을 잡는 모습이 큰 화제가 되었으며, 그렇게 구속 기소가 된 노태우 전 대통령은 1997년 4월 17일 반란모의참여죄 등으로 징역 17년을 선고받고 교도소 수감을 하게 된다. 이에 헌정사상 첫 번째로 구속된 전 대통령이 되었으나 1997년 12월 22일 김영삼 대통령에 의하 특별 사면을 받고 출소하였다. 이후 2002년 전립선암 수술 이후 전강 악화로 인해 연희동 자택과 병원을 오가면서 칩거생활을 이어갔고, 거기에 희소병인 소뇌위축증까지 앓고 있었으며 제대로 거동조차 힘들어하여 휠체어를 타고 지팡이를 잡고 생활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2007년 6월에 열린 6.29 선언 20주년 만찬장 참석을 마지막으로 공식석상과 매스컴에 전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2000년대 후반에는 기본적인 의사소통에도 지장이 있을 만큼 더욱 건강이 악화되어 거의 식물인간이나 다름없는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2021년 숙환으로 인해 서울대학교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았으나 결국 건강을 다시 회복하지 못하고 2021년 10월 26일 향년 88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사망일 10월 26일은 과거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사망 날짜와 같다는 것이 큰 주목이 되었고, 하지만 박정희 전 대통령은 김재규에 의한 타살, 노태우 전 대통령은 숙환으로 인한 별세라는 차이점이 있다. 이로써 대한민국 13대 대통령이자 대한민국 제6공화국의 노태우 전 대통령은 그렇게 영면하게 되었으며, 그리고 얼마 뒤인 11월 23일엔 오랜 친구 전두환 전 대통령도 사망하였으며, 2021년 10월 26일 사망하면서 윤보선, 이승만, 전두환에 이어 별세한 역대 대통령 중에 네 번째로 장수한 대통령으로 기록되었다. 

 

 

 

 

박정희의 친위 세력이면서 12.12 반란까지 주동한 하나회 출신이면서도, 그는 전두환과 다르게 학창시절에도 그렇고, 육사 시절, 박정희 시절에도 상당히 지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육사에서 영어교사까지 지낸적이 있으며, 특히 대통령이 되고 나서는 1년 형이면서 친구이자 전우이기도 한 전두환을 백담사로 유배 보내다시피 쫓아내고, 대표적인 정적 중 하나였던 김영삼, 김대중을 포섭하려 했으며, 김영삼과 연합하여 3당 합당을 한 것과, 대통령 시절에도 김영삼을 포함한 여러 인재들을 청와대로 불러 주요 현안에 대해 자주 토론을 나눈 행보도 그렇고, 그가 남긴 업적도 은근히 존재하는 데다, 아들 노재헌도 광주를 여러차례 찾아가 방문하여 5.18 비극에 대해 거듭 사과를 하고 미국 변호사 자격증을 획득하는 상당히 지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등 최근에는 노태우 자체도 상당히 좋은 대통령이었다는 재평가가 많이 늘어나고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도 이런 노태우에 대해 박정희와 전두환은 사망하기 전까지 매우 싫어했던 반면, 호의적까지는 아니지만 크게 문제삼지 않았다.

 

 

 

 

실제로 노태우 전 대통령은 영어를 매우 잘했으며, 그의 영어 실력 덕분에 한때 영어 교관을 맡았을 정도로 수재였다. 1989년 10월 미국 순방 당시에는 미국 국회의사당에서 영어로 연설하기도 했는데, 이는 이승만의 1954년 미국 국회 연설 이래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는 두 번째 사례였다. 그리고 지적인 두뇌 뿐만이 아닌 운동도 상당히 잘했다고 알려져 있으며, 그러나 스포츠 자체에는 크게 관심이 없어서 젊은시절에 했던 럭비와 테니스 정도만 여가시간에 했을 정도였다. 반면에 전두환은 스포츠에 관심이 매우 많은편이였는데 복싱과 축구, 야구 모두 좋아해 웬만한 중계는 꼬박꼬박 챙겨보았을 정도였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중에서 가장 미남 대통령으로 손꼽히고 있다. 키도 178센치로 체격 또한 빠지지 않았는데, 실제 당시를 살던 어르신들 사이에서 부처님 상이라면서 노태우를 뽑은 사례도 존재한다는 이야기가 돌곤 했다. 그리고 부인 김옥숙 여사도 미인이라서 자녀와 손주들 모두 빠지지 않는 준수한 외모를 보여주고 있다.

 

 

 

 

여담으로는 과거 장교였던 시절에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노태우와 차지철에게 권유해서 박정희와 그 가족들, 차지철과 노태우가 휴가를 같이 갔었는데 차지철이 물에 절대 들어가지 않으려고 하자, 박정희가 "물이 무섭냐"라고 묻자, 차지철이 "저희 어머님이 물에 들어가지 마라고 하셨습니다"라고 하면서 물에 들어가지 않았었다고 자신의 회고록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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