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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지사 안희정 프로필 나이 김지은 비서 가족관계 부인 민주원 아들 고향 학력 군대 종교

by 얼굴은나의무기 2024. 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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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충남지사 안희정의 성범죄 피해자 비서 김지은이 안희정 전 지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지 4년여만에 일부 승소를 했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5월 24일에 열린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 22부는 김지은이 안희정 전 지사와 충남도를 상대로 법원에 낸 3억원 상당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안희정 전 지사는 8347만원, 충남도는 안희정 전 지사와 공동으로 이 돈 가운데 5347만원을 김지은에게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한편 안희정 전 충남지사는 2017년 7월부터 2018년 2월까지 비서로 근무하던 김지은에게 강제추행에 성폭행까지 저지른 혐의로 징역 3년 6개월의 실형을 최종선고 받아 2022년 8월에 만기 출소를 했다. 이에 안희정은 공직선거법에 따라 출소일 기준으로 10년 동안 피선거권 박탈이 유지된다.

 

 

 

 

안희정 프로필

 

나이 : 1964년 12월 1일 출생. 59세

고향 :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마산리

현 거주지 : 경기도 양평군 양평읍

가족관계 : 형 , 누나, 여동생 2, 부인 민주원(이혼), 자녀 아들 2

학력 : 구자곡국민학교 졸업 - 연무중학교 졸업 - 남대전고등학교 제적 - 성남고등학교 중퇴 - 고등학교 졸업학력 검정고시 합격 -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철학 학사

군대 : 전시근로역(수형)

신체 : 175센치, A형

약력 : 통일민주당 김덕룡 국회의원 비서관 - 민주당 이철 사무총장 비서관 - 민주당 이수인 국회의원 비서관 - 노무현 변호사 사무실 비서 - 지방자치실무연구소 사무국장 - 자치경영연구원 사무국장 - 새천년민주당 국가전략연구소 부소장 -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원 - 참여정부평가포럼 상임집행위원장 - 더좋은민주주의연구소 소장 - 민주당 최고위원 - 민주당 논산시/계룡시/금산군 지역위원장 - 민주당 행복도시원안사수특별위원회 공동위원장 - 제37대 충청남도지사 - 제37대 충청남도지사 - 충남도립대학교 이사장 - 전국시도지사협의회 감사 - 더불어민주당 참좋은지방정부위원회 위원장 - 더불어민주당 제19대 대통령 선거 경선후보

 

 

 

 

안희정 전 지사는 1965년 5월 1일 충남 논산 지역에서 태어났으며, 중학교 시절에 함석헌의 씨알의 소리, 러시아 혁명사를 읽고 감명 받은 것과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 5.18 민주화운동을 보고 큰 정신적 충격을 받아 학생 운동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학교를 그만두겠다는 결심을 한 것은 장폴 사르트르의 책 구정 중에 '지식인은 자본주의 사회의 창녀다'를 읽고 나서였다고 한다. 학력 과정이 꽤 복잡한데, 고등학교 1학년 시절 학도호국단 연대장을 맡기도 했으며 하지만 충남대 재학생들하고 함께 학생운동을 하다가 붙잡혀 몽둥이로 맞았다고 한다. 학교가 문제 학생들을 삼청교육대로 보내도록 하라고 지시하였으나 교정에게 "문제학생을 학교가 교화시켜야지, 왜 삼청교육대에 보내는가"라고 항의하다 위에 불온 서적 문제까지 겹쳐서 제적 처분을 받았다고 한다.

 

 

 

 

제적을 당한 뒤 고향 논산으로 내려가 농사일을 하고 있었는데, 가을 추수가 한참일 때 아버지가 학교에 가라는 으름장을 놓았다고 한다. 이에 아버지의 뜻에 따라 서울 동작구 대방동에 있는 성남고등학교로 다니게 되었지만 입학한 지 3개월을 넘기지 못하고 다시 자퇴를 하고 말았다. 이후 안희정은 누나가 야학 선생님으로 일하고 있었던 제일교회의 '형제야학'에서 청계피복 노동자들과 교류를 하게 되었고 혁명을 하겠다는 막연한 생각만 가지고 있을 뿐 학생도, 노동자도 아닌 말 그대로 백수나 다름없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곤 조바심을 가지게 되었다.

 

 

 

 

일단 혁명을 해야겠으니 혁명 서클에 가입하였지만, 당시 혁명 서클은 대부분 대학생 위주로 돌아가고 있었던 시기였기 때문에 고등학교 졸업도 못한 미성년자를 받아주는 곳이 하나도 없었다. 결국 학생 운동을 하기 위해 검정고시를 보았고, 마침내 통과한 후 고려대학교 철학과에 진학하게 되었다. 하지만 대학 진학 계기가 학생 운동만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기에 학부 과정을 충실히 공부했을리 만무하며, 오로지 지하 서클 활동에만 신경쓰는 날들이 이어졌다. 이후 운동권 생활을 보내다가 1987년, 1988년 반미청년회 사건으로 교도소에 잡혀가 제적되었으며, 출소 이후 정치계에 입문하면서 대학은 계속 휴학하게 되었다. 그리고 1988년에 두번째로 수감되어 악명높은 남산 안기부에서 혹독한 고문을 받게 되면서 안희정의 앞날에 큰 변화들이 찾아오게 된다.

 

 

 

 

남산에 끌려가 당한 고문으로 정신적, 육체적 모두 철저하게 패배한 안희정. 그는 결국 함께 학생 운동을 하던 동료들의 이름을 자백할 정도로 나락하였지만, 부끄러움에 몸서리치면서도 1년간의 수감생활 동안 자신의 이상을 계속하여 끊임없이 돌아보면서 공부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지금까지도 극단적인 수단을 고수하는 NL계열 인사들과는 달리 젊은 나이임에도 원숙한 정치인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경험이 크게 작용하였다. 이후 잠시 출판사에 다니면서 영업 업무를 보다가 관두고 복학하여 고려대 철학과를 졸업하였다.

 

 

 

 

1989년 김영삼의 통일민주당에서 보좌관으로 정계 입문한 안희정은 이후 노무현 당시 전 의원의 최측근이 되어 '노무현의 왼팔', '노무현의 좌희정 & 우광재' 심지어 '노무현의 정치적 동업자'라고 불리면서 정치인 노무현의 행보 및 정책적 방향에 큰 영향을 끼쳤다. 자타가 인정하고 공인하는 참여정부 성림 일등 공신이었지만 2002년 대선 이후 선거법 위반으로 징역형을 받게 되어 참여정부에서 함께 자리를 하지 못했다. 하지만 노무현 당시 대통령을 대신하여 감옥에 갔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여전히 친노에서 영향력은 여전하였다.

 

 

 

 

충남도지사에 당선되기 전까지 실질적인 정치 경력은 없었지만, 2010년 고향에서 충청남도지사에 당선, 연임에 성공하면서 거물급 정치인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정치인임에도 영화배우에 비견될 만한 준수한 외모, 민주당 정치인 중 온건한 대중적 이미지, 안정적인 도정 활동 등을 바탕으로 문재인의 후발 주자로서의 차기 대권주자 지지율 선두를 달리기도 했다. 그러던 중 성범죄 사건으로 인해 제37대 충청남도지사를 사회하고 정치 활동 중단 및 정계 은퇴를 선언하였으며 이후 더불어민주당 윤리위원회에서 만장 일치로 제명 및 출당 조치되었다.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당시 분노에 찬 인터뷰를 하기도 한 안희정. 그는 평소처럼 온화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매우 격하게 의견을 표출하였다. 이후 김영삼이 이명박에게 노무현을 국민장으로 치러 준 것은 큰 실수고, 가족장으로 충분했다며 노무현은 내가 정치에 입문시켰건만 의리가 없다고 폄하하자, 김영삼에게 "노무현 대통령님은 김영삼 대통령에게 빚진 것이 전혀 없습니다. 김영삼 씨가 노무현 대통령께 빚을 진 것입니다. 김영삼 대통령은 사과하시오"라고 전하며 사과를 요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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