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Issue

국회의장 김진표 프로필 국회의원 나이 고향 학력 지역구 가족 부인 자녀 군대 약력

by 얼굴은나의무기 2024. 5. 3.

 

 

김진표 프로필

 

나이 : 1947년 5월 4일 출생. 76세

고향 : 황해남도 연안군

현 거주지 : 서울특별시 강남구 도곡동 개포4차 우성아파트.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우만동 동수원월드메르디앙

가족 : 부인 신중희, 자녀 1남 1녀

학력 : 수원서호국민학교 졸업 - 수원중학교 졸업 - 경복고등학교 졸업 -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 학사 - 위스콘신 대학교 대학원 저책학 석사

군대 : 공군 제10전투비행단 일병 복무 만료

지역구 : 경기 수원시 무

소속 정당 : 무소속(기존 더불어민주당이었지만, 국회의장 취임으로 인해 탈당)

현직 : 제21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 제21대 국회의원

약력 : 제13회 행정고시 합격 - 재정경제부 세제실장 - 재정경제부차관 - 대통령비서실 정책기획수석비서관 - 국무조정실장 -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장관 - 제17대 국회의원 -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장관 - 열린우리당 정책위원회 의장 - 대통합민주신당 정책위원회 의장 - 국회 신성장산업포럼 회장 - 제18대 국회의원 - 민주당 최고위원 - 민주당 참좋은지방정부위원장 - 민주당 원내대표 - 민주통합당 원내대표 - 제19대 국회의원 - 국회지방재정특별위원장 - 아주대학교 초빙교수 - 제20대 국회의원 - 국정기획자문위원장 - 국회 코로나19대책특별위원장 - 제21대 국회의원 - 국회 윤리특별위원회 위원장 - 한일의원연맹 회장 - 제21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

 

 

 

 

1947년 5월 4일, 경기 연백군 연안읍 지역에서 태어난 김진표 국회의장은 6.25 한국전쟁 당시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피난을 떠나 경기도 수원시에서 정착하였으나 어머니는 이때 함께 따라오지 못하면서 이산가족이 되었다. 수원에서 성장기를 보내면서 매산국민학교에 다니다가 서호국민학교로 전학 후 졸업하였으며, 수원중학교, 경복고등학교를 차례대로 졸업하였다. 한편 경기고등학교로 진학할 성적이 충분했지만 중학교 담당선생님이 경복고 출신이라 경복고를 추천해 진했는데 경복중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경복고 재학시절 차별을 겪었다고 한다. 이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로 진학해 졸업하였으며 군입대는 공직 입문 후인 1974년 7월, 수원 권선구 수원비행장에 위치한 공군 제10전투비행단에서 노무 특기로 수행했다. 한편 1년 방위병이였기에 1975년 8월 25일, 일병 계끕으로 소집해제도어 군복무를 마쳤다.

 

 

 

 

대학 졸업 후 2년 뒤인 1973년, 행정고등고시를 패스한 후 재무 관련 부처에서 긴 시간동안 재경직 공무원으로 공직생활을 하였다. 첫 발령지는 대전지방국세청이었고 부과국에서 소비세과장직을 맡았으며 이후 재무부 세제국으로 발령받아 근무하였다. 1983년에는 공직 입문 10년 만에 서기관으로 승진하여 중부지방국세청 영월세무서장을 맡았으며 2년 동안 세무서장을 지내다가 다시 재무부 본부 과장이 되었다. 1988년, 미국 위스콘신 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여 공공정책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고, 다시 귀국 후에는 새제국에서 과장 직위를 임명 받아 근무하였으며, 1992년에는 부이사관으로 승진해 한국조세연구원으로 근무하였다. 또한 같은 해에 14대 대선에서 민주자유당 김영삼 후보가 당선되면서 그의 관료 인생에 터닝포인트가 되는 시점이 찾아온다.

 

 

 

 

1993년에는 재무부 본부로 복귀하여 세제실 심의관을 맡았으며 김영삼 대통령이 비밀리에 금융실명제 시행을 추진할 때 실무를 담당하기도 했다. 1995년 재무부와 경제기획원이 재정경제원으로 합쳐지자 대외경제국 심의관을 맡았으며 이듬 해인 1996년에는 이사관으로 승진해 현재의 대변인 격인 공보관을 맡아 수행했다. 국민의 정부가 들어서자 첫 인사인 1998년 3월, 세제실 재산소비세심의관을 맡게 되었으며, 얼마 후 세제총괄심의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또한 연말에는 관리관으로 승진하여 2000년 10월에 열린 ASEM 정상회의를 준비하기 위해 설치된 ASEM 준비기획단 사업추진본부장을 맡았으며, 1999년 1월 정부의 조세 실무 총괄을 맡는 재정경제부 세제실장을 맡았다.

 

 

 

 

2001년 4월에는 재정경제부차관으로 임명되었으며, 2002년 1월에는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정책기획수석비서관에 임명되었다. 이어 7월에는 국무조정실장을 역임하였고, 2003년부터 2004년까지인 참여정부 초기에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장관을 동시 역임하기도 했다. 그리고 2004년 17대 총선에서는 열린우리당 후부로 경기 수원시 영통구 지역구에 국회의원 출마 후 당선이 되면서 본격적인 정치 활동에 시동을 걸었고, 이듬해 2005년부터 2006년 사이에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장관을 역임, 2007년엔 열린우리당의 마지막 정책위원회 의장을 맡기도 했다.

 

 

 

 

2008년에 치러진 18대 총선에서는 통합민주당 소속으로 17대와 같은 수원 영통구 지역구에 출마하여 2선 연임에 성공하였으며, 차기 19대 총선에서는 민주통합당 소속으로 수원시 정 지역구에 출마해 3선 연임에 성공하였다. 하지만 2014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새정치민주연합 경기도지사 후보로 출마하여 국회의원을 내려놓았고, 본선거에서 새누리당의 남경필 후보에게 패하며 낙선하였다.

 

 

 

 

2016년에 열린 20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 신설된 경기 수원 무 지역구에 출마하여 당선 되었으며, 다음해 2017년 19대 대선에서는 문재인 캠프의 선거 공동대책위원장과 일자리위원장을 역임했다. 2020년 21대 총선에서는 공천받아 5선에 도전한 김진표 의원은 큰 고비없이 무난하게 당선이 되면서 21대 총선 당선자 중에 최고령 기록을 세웠다.

 

 

 

 

2022년 5월 24일, 원내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 국회의장 후보로 우상호 의원을 제치고 공식 선출이 되었고, 7월 4일에는 제21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으로 선출 되었다. 이후 6일에는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를 국회사무총장으로 내정하였으며 22일에는 중재 아래 극적으로 야아가 원구성으로 합의하면서 각 상임위원장 및 국회사무총장이 선출,임명되면서 본격적인 후반기 원 활동이 시작되었다. 8월 4일에는 대만 방문을 마치고 방한하는 낸시 펠로시 미 연방 하원의장과 양자 회담을 가지면서 인도-태평양 지역의 안보 및 경제 협력, 기후 위기 등의 현안에 대해 1시간 가량 회담을 가졌다.

 

 

 

 

한편 국회의장을 마지막으로 정계은퇴를 한 것으로 예상하는 가운데, 수원시 무 지역구는 염태영 전 수원시장이 물려게 되었다. 이후 2024년 4월에 열린 22대 총선 직후 국회에서 법제사법위원회를 법제위원회와 사법위원회로 분리하여 권한을 분산시키고 업무 분담으로 행정처리를 원할하게 할 수 있는 법안을 대표발의하였다. 이것을 정치개혁으로 본인은 여기고 있지만 당원들은 공동발의한 의원들 중에 친명계가 없는 것을 마땅치 않아하고, 그리고 총선에서 민주당이 좋은 성과를 거둔 직후 법사위원장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다는 당론이 정해진 상황이기에 당원들이 김진표 의장에게 반발에 나섰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