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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신승훈 나이 프로필 결혼 부인 아내 근황 데뷔 보이지 않는 사랑 노래모음

by 얼굴은나의무기 2024. 6. 19.

 

 

 

가수 신승훈은 1990년 '미소 속에 비친 그대' 데뷔곡으로 밀리언셀러를 달성하였고, 이후 '보이지 않는 사랑', '나보다 조금 더 높은 곳에 니가 있을뿐', '아이 빌리브' 등 수많은 히트곡을 발표하여 30년이 한참 넘도로 꾸준히 음악 활동을 펼치고 있다. 특히 2집 타이틀곡 '보이지 않는 사랑' 노래는 <SBS 인기가요>에서 14주 연속 1위라는 한국 기네스북 기록을 보유하고 있으며, 또한 전세계적으로도 많지 않은 1집부터 7집까지 모두 100만장 이상씩을 판매한 기록을 더불어 1집부터 10집까지 골든디시크 10회 연속 수상한 대한민국 유일한 가수다. 그리고 한국 가요음반 역사상 BTS가 등장하기전 유일한 1700만장 이상 누적판매량을 보유한 전무후무한 대한민국 뮤지션계의 레전드다. 한편 최근에는 방송 활동을 자제하면서 SNS을 통해서 종종 본인의 사진과 함께 일상적인 근황을 전하고 있다.

 

 

 

 

신승훈 프로필

 

나이 : 1966년 4월 11일 출생. 58세

고향 : 대전광역시 동구 소제동

가족: 아버지(2022년 별세), 어머니 (1938년생), 첫째 누나(1958년생), 둘째 누나(1963년생), 남동생(1969년생, 여동생(1971년생)

결혼 : 미혼(부인 아내 X)

학력 : 대전동광초등학교 졸업 - 대전동중학교 졸업 - 대전대신고등학교 졸업 - 충남대학교 경영학 학사

군대 : 방위병(시력 저하)

신체 : 키168센치, 체중 65키로

혈액형 : O형

데뷔 : 1990년 11월 1일 정규 1집 '미소 속에 비친 그대'

소속사 : 도로시컴퍼니(대표이사가 여동생)

 

 

 

 

신승훈의 유년기 시절에 대해서 보면 과거에는 1968년생으로 알려졌으나 실제 태어난 생년월일은 1966년 4월 11일이라고 한다. 당시 지명으로는 충남 대전 신안동 지역에서 태어난 신승훈은 노래를 잘 부르는 부모님의 피를 물려받아 어릴 때부터 노래를 잘했다고 하며 특히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의 'Ben'을 미성인 목소리로 잘 불렀다고 한다. 가족들이 노래를 전부 잘하는 유전적인 DNA가 흐르고 있으며, 심지어 오죽하면 가족끼리 함께 노래방에 가면 남동생이 워낙 트로트 장르의 노래를 잘 불러 정작 '발라드의 황태자' 신승훈은 찬밥신세가 되어 가족들이 눈길을 주지도 않는다고 한다.

 

 

 

 

신승훈이 중학교에 다닐 때 아버지가 기타를 선물하게 되는데 이 순간이 신승훈에게 있어서 큰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 사실 이 사연엔 숨겨진 이야기가 있는데, 아버지하고 동생하고 같이 스케이트장에 가려다가 얼음이 녹는 바람에 가지 못하게 되었고, 아버지는 아들 신승훈이 속상해하자 바이올린을, 남동생에게는 기타를 대신 선물로 사주셨다고 한다. 하지만 신승훈은 바이올린보다 기타가 더 땡겼고, 그래서 동생과 악기를 바꾸었다고 한다. 결국 이 일이 신승훈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게 되는데.. 후에 인터뷰에서 말하기를 처음 기타를 잡았던 순간, 이것이 나의 인생을 지켜줄 생명체라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으며, 훗날 가수의 길을 반대하는 아버지에게 어머니는 그날 기타까지 사주고나서 이제와서 왜 반대를 하느냐며 따져 물었고, 어머니만은 신승훈이 기꺼이 가수가 되는데 두 팔 걷고 밀어주었다고 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1년을 재수해서 아버지의 뜻에 따라 경영학과에 진학하게 되었으나, 결국 음악의 꿈을 접을 수 없던 신승훈은 충남대학교 통기타 동아리인 '팝스우리'에서 음악활동을 시작하였다. 대학교 1학년 2학기부터는 본격적으로 통기타 아르바이트를 하였고, 카페를 비롯하여 음악 감상실, 호프집, 피자집, 미용실, 수영장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고 한다. 그러다 대전 지역내에서 신승훈이란 이름이 많이 알려지게 되고, 당시 성현기가 진행하는 대전 MBC 별밤의 보조 MBC와 고정 게스트로 출연하기도 했으며, 이때 즈음 데뷔곡인 '미소 속에 비친 그대'를 작곡하였다.

 

 

 

 

이후 신승훈은 본격적으로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앨범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서울로 상경하였으나 일이 뜻대로 잘 풀리지 않았다. 결국 상경 후 오랫동안 경제적으로 힘들어 라면으로만 끼니를 때우다가 결국 장이 꼬여 다시 대전으로 내려오게 되었으며, 이때 고생을 너무 심하게 한 나머지 처음으로 가수를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대로 주저하지 않고 다시 대전에서 꾸준히 통기타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서울에 있는 기획사 여러군데에 데모테이프를 돌렸고, 결국 작사가인 신재각에게 눈에 띄게 되면서 김창환을 소개 받아 본격적으로 꿈에 그리던 가수 데뷔를 하게 되었다.

 

 

 

 

데뷔 초에 신승훈은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앨범이 있는 것도 신기한데, 그 앨범을 사람들이 돈을 주고 구매해서 듣고, 또 좋아해주는 것이 너무 신기했다고 한다. 실제로 강남역에서 '미소 속에 비친 그대'가 리어카 뿐만 아닌 길거리 사방에서 흘러나오는 것을 보고는 너무나 신기한 나머지 그저 넋을 놓고서 한동안 서있었던 적이 있었다고 한다. 물론 데뷔한지 얼만 안됐었기에 길거리 사람들은 본인을 전혀 알아보지 못했는데, 그  와중에 한 여성이 근처 레코드판 가게에 들어가서 본인의 LP판을 사가지고 나오는 모습을 직접 보고서 직접 고맙다고 이야기 하려 했으나 실패했다고 한다.

 

 

 

 

신승훈 가수하면 역시 뮤직비디오를 떠오르지 않을수가 없다. 그는 자신의 노래 만큼이나 뮤직비디오에도 상당히 공을 들이는 편으로 유명한데, 가장 유명한 뮤비가 바로 '전설 속의 누군가처럼' 노래다. 그리고 국내 최초로 '오브제 애니메이션'을 도입해 세계 애니메이션 대회에서 커머셜 부분 상을 받은 '사랑해도 헤어질 수 있다면', 또한 국내 최초로 첨단 CG를 이용해 실사와 애니메이션을 합성해서 만든 '그런 날이 오겠죠' 등 수많은 명품 뮤직비디오를 탄생시켰다.

 

 

 

 

보기와는 달리 신승훈은 상당한 애주가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술 주량이 엄청 센 편인데, 그것도 본인이 먼저 취해서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며 귀기한 적이 없을 정도라고 한다. 같이 술자리에 있던 주변 사람을 챙긴 적은 많아도 남이 나를 챙겨 준 적이 없다면서, 아버지에게 술을 엄하게 배운 탓인지 주사 같은 것도 없다고 한다. 여기서 공교럽게도 1990년대 가요계의 라이벌이었던 김건모 또한 집 인테리어로 소주 분수대를 가져다 놓을 만큼 상당한 애주가이다. 그리고 더욱 반전인 것은 단순 흡연가가 아닌 헤비스모커로 알려져 있다.

 

 

 

 

아직 결혼하지 않은 싱글이지만 요리를 곧 잘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는 신승훈이다. 예전에 싸이 부부가 신승훈의 집에 초대를 받아서 놀러갔는데 생각치도 못했던 샤브샤브를 직접 만들어 내놨다고 한다. 거기에 소스가 무려 11가지 였다고 하며, 이에 싸이는 민간인 집에 소스가 11가지가 있다는 것이 말이 되냐면서 감탄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문세는 신승훈의 집에 예고도 없이 놀러온 적이 있었는데 어떤걸 대접해줘야 할지 고민하다가 어머니께 전화를 걸어 떡국 만드는 법을 전화로 배워 잠시후 뚝딱 해줬었는데 맛을 본 이문세는 "이거 밖에서 파는거 아냐?"라고 할 만큼 음식 솜씨가 출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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