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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orts

김성근 감독 나이 가족 아들 딸 자녀 부인 아내 연봉 국적 학력 고향 코치

by 얼굴은나의무기 2024. 6. 17.

 

 

김성근 감독은 전 KBO 리그 구단인 OB 베어스, 태평양 돌핀스, 삼성 라이온즈, 쌍방울 레이더스, LG 트윈수, SK 와이번스, 한화 이글스 등 감독을 맡았으며, 치바 롯데 마린즈,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등 일본프로야구 구단의 프런트 및 코치를 역임했다. 2022년 10월 16일에는 50년 동안 다사다난 했던 코치와 감독직을 모두 내려놓고 은퇴하였으며, 은퇴 당시 2022 시즌을 기준으로 80세였는데 이는 일본프로야구 전체 구단 중 최고령 지도자였다.

 

 

 

 

김성근 프로필

 

나이 : 1941년 10월 30일 출생. 82세

고향 : 일본 교토부 교토시 우쿄구

본적 : 경상남도 진주시 미천면

국적 : 대한민국

가족 : 3남 4녀 중 여섯째, 부인 오효순, 자녀 아들 김정준, 딸 2

학력 : 교토시립 시조중학교 졸업 - 교토부림 가쓰라고등학교 졸업 - 동아대학교 명예 학사

신체 : 키 180센치, 체중 82키로

혈액형 : A형

포지션 : 투수, 1루수

선수 소속팀 : 교통부(1961) - 기업은행(1962~1968)

지도자 소속팀 : 마산상업고등학교 야구부 감독(1969~1970) - 기업은향 투수코치(1970~1971) - 기업은행 감독(1971~1975) - 충암고등학교 야구부 감독(1976~1979) - 신일고등학교 야구부 감독(1979~1981) - OB 베어스 투수코치(1982~1983) - OB 베어스 감독(1984~1988) - 태평양 돌핀스 감독(1989~1990) - 삼성 라이온즈 감독(1991~1992) - 해태 타이거즈 투수 인스트럭터(1994) - 쌍방울 레이더스 감독(1996~1999) - 삼성라이온즈 2군 감독(2000) - LG 트윈스 2군 감독(2001) - LG 트윈스 1군 수석코치(2001) - LG 트윈스 감독대행(2001) - LG 트윈스 감독(2002) - 치바 롯데 마린즈 1,2군 순회코치(2005~2006) - SK 와이번스 감독(2007~2011) - 고양 원더스 감독(2012~2014) - 한화 이글스 감독(2015~2017) -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감독부 특별 어드바이저(2022) -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코치 카운슬러(2018~2021)

 

 

 

 

김성근은 김응용에 이어 KBO 감독 누적 승수 2위로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최고의 명장 중 한 명으로, 충분히 KBO 리그 역사에 기록으로 남을만한 감독 인물이다. 그러나 승리를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스타일로, 끊이지 않는 혹사 논란 등 다양한 문제를 안고 있었던 감독이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2007 SK 와이번스 시절부터 최근 <최강야구> 감독에 이르리까지 '야신'이라는 칭호를 필두로 이러한 문제점이 상당히 희석되었는데 강성 팬덤과 야구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입문층, 그리고 이러한 김성근식 플레이에 치를 떨어왔었던 기존 야구의 오랜 팬덤층 사이에 가장 큰 갈등을 일으키는 감독이기도 하다.

 

 

 

 

'야구의 신'을 줄여서 '야신'이라는 별명은 2002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을 차지한 김응용 당시 삼성 라이온즈 감독이 우승소감 중 "LG 김성근 감독이 워낙 잘했어요 '신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라고 말한 발언에서 만들어졌다.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김성근 감독은 "내가 신이면 나를 이긴 자기는 무엇이가"라면서 웃으며 답하기도 했다. 김응용 감독은 이런 방식의 언론 플레이를 자주 했다. 강하면 비하하고, 약하면 과장하는 등. 김응용의 야신 발언은 우승한 후에 나왔기 때문에 상대를 띄워서 자신을 더 높이는 김응용식 화술로 볼 수 있다. 이른바 '립서비스'라고 이해하면 된다.

 

 

 

 

한화 이글스 감독을 맡기 이전에는 SK 와이번스 시절의 좋은 성적과 함께 언론과 자신에 의해 만들어진 좋은 이미지 매우 자주 불리던 별명이었고, 2015 시즌 중반까지도 자주 그렇게 불렸으나, 시즌 후반부터 보여진 독선적 운영과 투수 혹사논란이 일어난 이후로는 거의 불리지 않는 별명으로 잊혀지게 되었다. '야신' 대신 '킬성근', '곡성근' 등으로 불려지게 된 김성근 감독은 2015년 한화 감독 이후로 다시 '야신'이라고 볼려지긴 했으나, 지금 다시 이 별명을 돌아보면 그저 허상일 뿐. 오히려 비꼬는 별칭으로 변질되어 버렸는데, '야구는 쥐뿔도 모르는 X신' 혹은 '야바위의 신'과 같은 다소 비하하는 별칭으로 바뀌기도 했다.

 

 

 

 

김성근의 말투에 녹아있는 일본식 언양에 대해서 여러 비판적인 의견이 존재하고 있다. 비록 고향이 일본이지만 한국에 수십 년 동안 살았는데도 왜 일본 발음을 고수하느냐는 것. 김성근의 일본식 발음에 대한 비판적인 여론은 이미 오래전부터 존재해 있었는데, 김응용 감독 등도 그러한 투의 말을 한 적이 있다. 특히 같은 재일교포 출신인 김영덕 감독이 거의 완벽한 억양과 발음으로 우리말을 구하는 것과 대비되면서 더욱 공격대상이 되었다. 1960년대 실업야구의 대표적인 재일교포 선수였던 배수찬도 한국어를 자연스럽게 잘 보여주었고, 김영덕 전 감독은 김성근과 같은 교토 출신으로 일본에서 8년 동안 프로선수 생활을 마치고 28세 때 처음 한국 땅을 밟았다. 반면에 김성근 감독은 18세에 동아대에 입학하면서 한국으로 영구귀국하였다.

 

 

 

 

선호하는 등번호 38번은 절친한 사이였던 김동엽 해태, MBC 감독의 등번호로 김동엽 전 감독이 작고한 후 그를 기리기 위해서 달게 된 등번호로 알려져 있다. 김동엽은 지금 김성근의 아내인 오효순 씨를 소개해줬을 정도로 각별한 사이인데, 여담으로 프로야구 출범 초기 코치와 감독 생활을 하던 시기에는 쌍방울 감독 시절 91번을 달았던 것처럼 일반적으로 코칭스태프들이 즐겨 다는 70번대 이상 등번호를 달아왔으나, SK 감독 때부터 최강 몬스터즈 감독을 하고 있는 지금까지는 줄곧 38번을 달고 있다.

 

 

 

 

한편 김성근 감독은 외모에 대한 자부심이 상당히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정준에 대한 평가는 '아버지가 잘생겼다'였으며 본인의 자서전에도 본인의 젊은시절의 외모가 출중했다는 내용이 자주 언급되어 있다. 물론 젊은시절 사진이 상당히 남자답게 매력이 있으나 당시에는 180센치가 넘는 장신은 드문 편이었으니 자부심을 가질 법도 보여진다. 그리고 이 자서전에는 자신의 부인과 딸들에 대해서도 상당히 예쁘다고 언급하는데, 실제 과거 김성근 부부의 결혼사진을 보면 아내는 지금 기준으로도 상당히 미인인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김성근 감독은 자신의 선수들에게 연애와 결혼에 대해서는 많이 경험하고 겪으라면서 권장하는 스타일이라고 한다. 감독 생활 초기 시절에는 선수들이 연애를 하는 것을 엄청나게 반대하고 막았으며, 몰래 외출하는 것을 막으려고 숙소 문까지 걸어 잠구기도 했었으나, 선수들이 10층 높이에서 난간에 매달려 나가는 것을 보고 연애라는 것은 애치이기에 막거나 할 수 없는 것이라 당시 느껴 선수들의 연애에 대한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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