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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김수희 나이 프로필 남편 자녀 딸 가족 노래모음 고향 학력 데뷔

by 얼굴은나의무기 2024. 6. 13.

 

 

가수 김수희는 18세의 나이로 미8군 무대를 통해 가수로 데뷔하였다. 그리고 이후에는 기타리스트, 작곡가, 작사가로도 데뷔하였으며, 데뷔 무렵엔 미8군부대 여성밴드 블랙캣츠로 활동하기도 했다. 가수와 작곡가로 활동한지 4년이 흐른 뒤인 1976년 음반을 발표하며 가수로 정식 데뷔하였으며 극심한 생활고를 겪었고, 그러다 1978년 데뷔 음반에 수록되었던 '너무합니다' 노래가 급작스럽게 열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스타가수 반열에 올랐다.

 

 

 

 

김수희 프로필

 

나이 : 1953년 3월 13일 출생. 71세

본명 : 김희수

고향 : 부산광역시 서구

가족 : 남편, 자녀 딸 이순정(가수), 아들 김재훈, 손자 2

학력 : 숙명여자고등학교 졸업

데뷔 : 1976년 노래 '너무합니다'

종교 : 천주교(세례명 : 마리아)

 

 

 

 

가수 활동을 시작할 무렵 명창 박초월에게 남도 창법을 배우는 등 다양한 창법들을 여구하였으며, 1982년 김수희를 1980년대를 대표하는 가수로 만들어준 '멍에' 노래를 발표했다. '너무합니다'가 뒤늦게 알려지면서 다시금 가수로 복귀한 김수희는 이 과정에서 음반 제작사의 권유로 결혼과 딸의 존재를 숨긴 채 '멍에' 곡을 발표했다고 알려져 있다. '멍에'가 히트를 거두면서 정상급 가수로 올라서게 된 김수희는 성공의 행복과 기쁨도 잠시, 1983년 10월 4일 정부의 대마초 파동사건에 연루되어 곤혹을 치르게 되었다. 사건이 발생하고 4일 뒤에 방송 정치, 2일 뒤 제명처분을 당했지만 치열한 공방 끝에 무죄로 판결되어 다시 가수로 복귀할 수 있게 되었다.

 

 

 

 

대마초 파동사건 이후 김수희는 아직도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남행열차' 명곡을 내면서 대중들의 인기를 또 다시 한 몸에 받게 되었다. '남행열차' 노래에서 김수희는 폭발적인 가창력까지 선보이면서 이 곡을 현재 2024년에도 국민가요로 만들었고, '여자 조용필'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1993년에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하여가' 노래가 4주 연속 1위 골든컵 수상을 앞둔 상황에서 제치고 1위를 차지하였고, 가요대상까지 휩쓴 '애모'를 발표하였다.

 

 

 

 

예전 김수희는 큰 교통사고를 당한 바 있는데, 이후 병원에서는 하반신 마비가 될 수도 있다는 소견을 들을 만큼 크게 다쳤었다. 당시 김수희는 남편에게 짐이 되기 싫었다는 이유로 대소변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남편에게 부탁하기 싫었다고 한다. 그래서 밥도 굶고 물도 안 먹었으며 이러다가 죽을 수도 있다는 얘기를 듣게 되었는데, 그때 남편이 편히 맡겨달라며 7개월 동안 옆에서 간호해줬다고 한다. 한편 김수희는 첫번째 결혼한 남편과는 이혼하였지만 이후 지금 남편을 만나 재혼하여 부부의 연을 이어가고 있다. 또한 자녀 중 딸 이순정은 과거 댄스가수 써니로 활동하기도 했다.

 

 

 

 

김수희는 18세 시절이던 숙명여자고등학교 재학 중일 때 작사가와 작곡가로 동시에 데뷔하였는데, 데뷔 무렵에는 블랙캣츠의 멤버로 활동하였으며 김훈의 '나를 두고 아리랑' 등 여러 곡들을 작곡하였다. 이후 1976년에 가수로 데뷔했을 때는 극심한 생활고로 활발한 활동을 할 수 없었지만, 이후로 2년 뒤 '너무합니다'와 1982년 '멍에' 곡이 큰 인기를 얻게 되면서 <가요톱10>에서 골든컵까지 차지하게 되었다.

 

 

 

 

하지만 1983년 10월 4일 정부의 대마초 파동사건에 휘말리면서 조사를 받게 되었고, 4일 뒤에 방송 정지를 당한면서 2일 뒤에 제명처분을 당했으나, 치열한 공방 끝에 얼마뒤 무죄를 받게 되어 다시 가수 활동을 이어갈 수 있게 되었다. 훗날 2013년 <기분 좋은 날>에 출연한 김수희는 그 당시에 너무 힘들었지만 어머니 덕분에 버틸 수 있었다고 밝혔으며, 딸 이순정 또한 그때 상황을 떠올리면서 눈물을 흘렸다. 이후 큰 사건을 묻어두고 '남행열차' 명곡을 내면서 최고의 가수 반열에 오른 김수희는 1993년 가요계에 큰 파란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1993년 9월 8일 <가요톱10>에서 1990년대의 끝판왕이자 문화대통령 서태지와 아이들의 '하여가' 곡이 골든컵을 앞두고 꺾은 가수가 등장했으니 바로 '애모'의 김수희였다. 그야말로 희대의 이변과 파란을 일이큰 가요계의 대사건이었다. 이때 김수희는 1위가 확정되자 너무 놀라서 어리둥절 했으며, 앵콜송 부를때는 눈물이 계속 멈추지 않아 노래를 못부를 지경이었을 정도였다고 한다. 급기야 이 노래는 5주 연속 1위를 하면서 서태지와 아이들의 '하여가'도 못이룬 골든컵을 수상했는데, 이 곡은 공교롭게도 트로트 곡의 마지막 골든컵 수상으로 남게 되었다.

 

 

 

 

'애모' 노래는 골드컵 수상까지 하면서 김수희는 이후로 각종 가요계 상을 휩쓸게 되었다. 1993년 KBS 가요대상 시상식에서 MC를 보던 김동건 아나운서가 김수희를 호명하는 순간 그녀는 몸을 파르르 떨면서 어찌할 줄 몰라하면서 눈물을 삼키고 수상 소감을 전했다. 그리고 마지막 앵콜 무대에서도 '애모'를 간신히 눈물을 흘리며 감정을 억제해가면서 부르다가 결국 울음이 터져 노래를 이어가지 못하자 옆에 노사연이 대신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불러주기도 했다. 그리고 현재 이 영상을 본 네티즌들은 대신 불러준 노사연의 성량에 대해 놀랍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1 대 100> 방송에 출연했던 김수희는 당시 딸 이순정도 100인으로 참여해 화제가 되었다. 이날 김수희는 1993년 KBS 가요대상에서 서태지와 아이들을 꺾고 대상을 수상할 때 처음엔 상을 못 탈 줄 알고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수상 이름이 호명되자 당황하고 눈물을 흘렸던 상황을 이야기했다. 526만원을 받아가는 우승자가 결정된 8단계 1:5까지 생존하였으며, 여담으로 김수희는 6단계에서 2인의 답 찬스를 쓸 때 본인이 선택한 답을 누르려다가 실수로 다른 답을 눌렀는데 그 답이 정답이라서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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