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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패티김 나이 프로필 남편 자녀 딸 길옥윤 고향 본명 학력 데뷔 소속사

by 얼굴은나의무기 2024. 6. 13.

 

 

가수 패티김은 항상 늘 '최초'라는 수식어를 지니고 다니는 원조 한류스타다. 1958년 8월 만 20세의 나이로 미8군 무대에서 데뷔한 패티김. 그녀는 당시 '린다 김'이라는 이름으로 '단장의 미아리 고개'로 잘 알려진 가수 이해연과 듀엣무대에서 첫 곡으로 패티 페이지의 노래 '테네시 월츠'를 불렀다. 이듬해 지금의 '패티김'이라는 이름으로 나섰고, 첫 무대에서 '틸 파트레'를 부르면서 패티김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당시 168센치의 큰 키와 늘씬한 몸매에서 나오는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군인들의 환호성을 열렬히 받았다. 광복 이후인 1960년 일본 정부가 처음으로 한국인 가수로 패티김을 초대하여 NHK 일본방송에 출연하였으며, 1962년에는 한국 가요계 최초로 '리사이틀' 공연도 성공리에 마쳤다. 그리고 1963년에는 미국으로 진출하여 NBC <자니 카슨의 투나잇쇼>에 출연하였으며, 1966년에는 한국 첫 창작 뮤지컬로 통하는 <살짝이 옵서예>에 주연을 맡아 출연하기도 했다. 1967년 국내 처음으로 개인의 이름을 건 방송 프로그램 <패티김 쇼>를 진행하였고, 1978년에는 대중가수로서 처음으로 세종문화회관 무대에 섰다. 1989년에는 미국 뉴욕 카네기홀과, 2000년 호주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무대 역시 국내 가수로는 처음 무대에 올랐다.

 

 

 

 

패티김 프로필

 

나이 : 1938년 2월 28일. 86세

본명 : 김혜자

고향 : 서울특별시 종로구 인사동

가족 : 첫번째 남편 길옥윤(1973년 이혼), 두번째 남편 아르만도 게디니, 자녀 첫째 딸 정아(길옥윤 사이에 얻은 딸), 둘째 딸 카밀라 게디니(게디니 사이에 얻은 딸)

학력 : 중앙여자고등학교 졸업

신체 : 168센치, B형

데뷔 : 1958년 미8군 무대

소속사 : PK 프로덕션

 

 

 

 

패티김은 자타공인 전설적인 디바이면서 아티스트로, 한국형 팝보컬의 선구자인 동시에 한국 대중가요계 역사에 숱한 '최초'의 타이틀을 보유한 레전드 가수다. 열광적인 무대매너와 트렌디한 스타일링, 팝을 기반으로 한 보이스 스타일과 넓은 음역대를 구사하는 드라마틱한 가창력으로 퀄리티와 격조 높은 보컬리스트로 불리고 있다.

 

 

 

 

1956년 국무총리배 판소리 경연대회에서 입상한 패티김은 2년 후 1958년 미8군 무대에 올라 가수 이해연과 듀엣으로 선 것이 그녀의 첫 가수 데뷔다. 위에 서술로 언급한 바와 같이 일본, 미국, 호주 등 각지 다른 해외로 진출하여 국내 최초의 여러 타이틀을 보유하게 되었고, 동양인 여성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특히 그 당시에 홀로 미국시장에 진출하려 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2013년에는 긴 가수 여정을 마무리하고 은퇴선언을 하였으며, 그녀는 여러 곡의 히트곡을 남겼고, 가수 현역으로서 한 시대를 풍미하고 지배했던 최정상급의 여성 가수로 남게 되었다.

 

 

 

 

패티김은 이미자와는 라이벌 관계로서, 데뷔시기도 같은 시기였고, 나이대도 비슷하고, 음악스타일 역시 이미자가 트로트의 여왕으로 한국적인 정서가 강한 노래를 많이 불렀다면 패티김은 스탠다드한 팝 위주의 세련되면서 서구적인 감성이 다분한 노래를 많이 불렀다는 점에서 차이점 또한 있다. 그리고 대중적인 측면에서도 이미자가 전통적이며 보수적인 여성상의 가수였다면 패티김은 도시적이며 세련된 분위기로 완전 상반되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오히려 이렇게 음악적 스타일이 상반되다보니 언론이나 대중들은 더욱 이 둘에게 라이벌 관계로 묶으며 비교하였다.

 

 

 

 

실제로도 서로 신경전이 상당히 치열하기도 했던 두 사람이였는데, 작곡가 임석호가 방송에서 밝히길 패티김을 영입하고 싶어했던 이미자의 소속 음반사 회장이 "우리와 계약하면 이미지와 같은 급으로 계약 해주겠다"라고 직접 스카웃 제의를 했다고 하며, 하지만 패티김은 "최고의 대우도 아니고 이미지와 동급이라니 말이 되냐"라며 단칼에 스카웃 제의를 거절했다고 한다. 또한 업계에서 유명한 일화로 방송국 측에서 패티김과 이미자를 동시 섭외를 하려 했는데 어느 한 쪽의 출연 순서가 뒤로 밀리면 캐스팅을 거부할 것이 당연했기 때문에 일부러 1순위로 써진 큐시트를 두 가수에게 보내주면서 겨우 캐스팅일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먼저 도착한 가수가 리허설을 빨리 마치고 무대에 먼저 올라가자 '나 일 있어서 무대 안 올라간다'며 그냥 노래도 안 부르고 가버렸다고 한다.

 

 

 

 

세월이 흐른 뒤에는 서로 같이 토크쇼 방송에도 나오고 좋은 이야기와 덕담들을 해주는 등 예전처럼 위엄과 카리스마가 상당히 가라 앉았다. 2010년에는 고인이 된 박춘석 작곡가의 추모 특집으로 방송된 프로그램에 같이 출연한 적이 있는데, "나는 대중가수지만 이미자는 국민가수다. 나와는 비교하기 힘들다"라고 세간의 라이벌로서 불화를 일축시키기도 했다. 또한 패티김 본인의 은퇴 당시 인터뷰에서는 "우리는 같은 가요계를 이끌어 온 동료일 뿐, 라이벌로 인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며 강하게 전하기도 했다.

 

 

 

 

결혼사를 보면 첫번째 결혼은 색소폰 연주자, 작사작곡가이자 치과의사였던 길옥윤과 1966년도에 결혼식을 올렸으나 1973년 이혼하면서 각자 길을 걷게 되었다. 그리고 1976년에는 이탈리아인 아르만도 게디니와 재혼하였으며 지금까지도 변함없이 부부의 연을 이어오고 있다. 이혼한 전남편인 길옥윤 경우에는 그저 성격차이 때문에 갈라섰는데, 술과 담배는 전혀 입에 대지 않고 매일 똑같은 시간에 자고 일어나고, 똑같은 시간에 밥을 먹을 정도로 칼같은 루틴 생활의 소유자였던 패티김과는 달리 길옥윤은 패티김과 전혀 상반대인 성형의 사람이었다고 한다. 자주 마음대로 술을 마시며 심지어 만취된 상태가 다수였고, 도박까지 즐기고 막 사는 사람이었기에 부부로서는 극과 극이었다고 할 수있다.

 

 

 

 

패티김의 자녀는 슬하에 두 딸이 있는데, 큰딸 최정아는 전남편인 길옥윤과 사이에서 1968년 11월 13일 태어났고, 둘째딸 카밀라 게디니는 재혼 후 1978년 12월 30일에 태어났다. 한편 장녀인 최정아도 백인인 영국 남자와 결혼하는 바람에 패티김의 후손은 장녀인 최정아만 제외하고 모두 외국인 혼혈이 되었고, 다만 장년 최정아 슬하에 태어난 자녀는 모두 대한민국 국적을 보유하고 있다. 한국이 부모양계주의 국적법으로 전화되어서 1998년 6월 14일생 이후부터는 부모 중에 한 명이라도 한국인일 경우 출생국가와 상관없이 한국 국적이 부여된다.

 

 

 

 

첫째딸 장정아는 순수 한국 혈통이기에 동양적인 외모의 보유자지만, 재혼 후에 낳은 이탈리아 혼혈 둘째딸 카밀라 게디니는 상당히 짙은 쌍꺼풀에 서구적인 외모의 보유자로 상당한 미인에 키도 171센치의 모델을 연상케 하는 비주얼을 보유하고 있다. 그리고 2003년에는 가수로 데뷔하기도 했으며 아무래도 데뷔 당시 패티김의 딸이라는 사실이 전해져 화제가 되었다. 데뷔앨범 역시 당시 유명한 유정연 작곡가와 업타운의 정연준, 러브홀릭의 강현민 등이 프로듀서로 참여했으며, 하지만 미국 정서와 맞지 않는 한국 연예계의 시스템 문화를 많이 어려워해 적응하는데 부족함을 느끼게 되었다. 이후 자신의 음악적 지향성과 원하지 않는 장르를 강요받는 등 한국에서의 가수 활동에 회의감을 느끼며 1집 활동 후 미국으로 건너가 웨딩플래너로 전업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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