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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수 국무총리 프로필 나이 가족 부인 자녀 고향 학력 군대

by 얼굴은나의무기 2024. 4. 20.

 

 

한덕수 국무총리는 전주시에서 국민학교를 다니던 9살 시절, 어머니를 따라 서울로 상경하여 올라왔다. 그렇게 서울재동국민학교로 전학을 하여 졸업하였고, 이후 전주북중학교를 졸업 후 경기고등학교로 입악해 졸업하였다. 1967년에는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경제학과로 진학하면서 졸업을 했으며 이때 상과대학을 수석인 전체 학생 중 3등으로 졸업하면서 민복기 당시 대법원장으로부터 대법원장상을 받기도 했다. 이때 당시에는 서울대 수석 졸업생에게 대통령상, 차석 졸업생에게 국회의장상, 3등 졸업생에게 대법원장상, 4등 졸업성에게 문교부장관상을 수상했다.

 

 

 

 

한덕수 국무총리 프로필

 

나이 : 1949년 6월 18일 출생. 74세

고향 :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현 거주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신문로2가

현직 : 국무총리

가족 : 부인 최아영, 자녀 X

학력 : 서울재동국민학교 졸업 - 전주북중학교 졸업 - 경기고등학교 졸업 -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경제학 학사 - 하버드 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석사 - 하버대 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박사

군대 : 육군본부 병장 만기 전역

약력 : 제8회 행정고등고시 합격 - 경제기획원 정책조정과장 - 상공부 미주통상과장 - 상공부 산업정책국장 - 대통령비서실 통상산업비서관 - 상공자원부 기획관리실장 - 통상자원부 통상무역실장 - 제11대 특허청장 - 제4대 통상산업무차관 - 초대 통상교섭본부장 - 주OECD 대사 - 대통령비서실 정책기획수석비서관 -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비서관 - 제8대 국무조정실장 - 제5대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장관 - 제38대 국무총리 - 제23대 주미대사 - 제28대 한국무역협회 회장

 

 

 

 

서울대학교 재학 시절, 1970년 8회 행정고등고시에 합격하면서 경제공무원으로 근무하였고 첫 발령지는 관세청이였다. 한편 대학 졸업 직후에는 육군에 입대하여 육본에서 행정병을 맡아 복무하였으며, 참여정부 시절인 2005년,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장관 취임 직전 인사청문회에서 육군 병장 출신이라고 목소리에 힘을 주어 말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한편 군 전역 이후에는 다시 복직을 하였고, 1976년에는 남덕우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장관 비서관으로 구미경협사절로 파견되었다. 그리고 1977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하버대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와 박사 수료를 마쳤으며, 1992년에는 산업정책국장을 맡아, 재임기간 동안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 중 산업 관련 정책의 실무를 처리했다. 이후 1992년에 이사관으로 승진하였으며 1993년 1월, 전자정보공업국장으로 임명되었다.

 

 

 

 

문민정부 시절인 1993년 4월, 김영삼 대통령 취임 후 대통령비서실로 파견되어 경제수석 밑의 통상산업비서관에 임명되었다. 그리고 김대중 대통령이 취임하자 국민의 정부가 들어선 1998년 3월~2001년 2월 사이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을 역임하였으며 이 기간 동안 한미자유무역협정을 최초 추진하였고, 칠레와 자유무역협정을 체결, APEC 정상회의 관련 실무도 함께 수행하였다.

 

 

 

 

참여정부 시절인 2005년 3월~2006년 7월 사이에는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장관을 동시 역임을 하였으며, 이 시기 동안에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과 '금산법'으로 불린 금융,산업자본 분리 관련 정책에 대해 전면 재검토를 실시했다. 이후 2006년 3월에는 이해찬 국무총리가 삼일절에 골프를 치러간 이슈로 사퇴를 하자, 4월에 한명숙 국무총리가 임명될 때까지 한덕수가 국무총리 권한대행을 겸임하였다. 부총리 퇴임 이후에는 2006년 8월, 한미 FTA 체결지원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한미 FTA가 체결되는데 기여하였다.

 

 

 

 

2007년 4월 이후로 2008년 2월까지 한명숙을 대체하며 참여정부의 마지막 국무총리를 지내게 됐다. 이후 정권교체가 이루지면서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2009년 2월~2012년 2월 사이 초대 주미대사를 역임하면서 보수와 진보 가리지 않고 실무형 인사로 중용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특히 주미대사는 형식적으로는 장관급 의전을 받지만 초강대국 미국과의 관계의 중심에 있는 만큼 그 중요성과 명망이 높은 자리이다. 또한 참여정부의 미국과의 관계 악화를 비판적으로 보며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추구하던 이명박 정부가 첫 주미대사로 한덕수를 배치한 것은 미국 유학파라는 개인적 배경 및 토상 관료로서의 커리어 뿐만 아닌 이명박 정부 차원의 신뢰도 포함되어있음을 시사할 수 있다. 한편 대사직을 내려놓은 이후에는 한국무역협회장 자리에 올랐으며 2022년까지 여러 사회기관에서 활동하였다.

 

 

 

 

2022년 5월 21일, 윤석열 대통령에게 임명장을 받으면서 공식적으로 제48대 국무총리 취임이 되었다. 첫 일정은 국립서울현충원에 방문해 참배를 하였고, 또한 미국 대통령인 조 바이든이 한미정상회담을 위해 방한하였을때 함께 열린 만찬에 참석하여 바이튼과 악수와 인사를 나누었다. 2022년 6월 16일에는 양산 평산마을을 방문하여 본인이 과거 참여정부의 38대 총리였던 시절, 대통령비서실장이었던 문재인 전 대통령을 만났다. 같은 해 10월 29일에는 대참사를 불러온 이태원 압사 사건과 관련하여 윤석열 대통령, 김건희를 비롯한 정부 주요인사들과 함께 서울광장 합동분향소를 찾아 조문하였으며 고이놔 유족들에게 애도를 기렸다.

 

 

 

 

2023년 9월 23일에 열린 항저우 아시안 게임 개막식에서 한국 정부를 대표하여 참석하였으며, 또한 중국 주석인 시진핑과 만나 회담을 가지면서 한중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했는데, 회담 당시 국제 상황에 비추어 볼 때 대한민국으로서는 러시아와 강하게 밀착하는 북한에 대한 견제, 중국으로서는 미국의 대중국 봉쇄를 타개하기 위한 해결책 중 하나로 미국의 핵심 동맹인 한국과의 관계 개선 모색 등 양국의 이해관계가 맞아 서로 관계 개선의 물고를 튼 것으로 내다보고 있는 편이다.

 

 

 

 

비록 사우디에게 밀려 유치가 불발 되었으나 2030 부산 엑스포 유치전을 위해 총회가 열리는 프랑스 파리에 방문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 펼쳤다. 이 자리에는 한덕수 총리 외에 박형준 부산시장과 한국 재계 인사들도 함께 하였으며, 또한 아시아 최초의 청소년 동계올림픽인 2024 강원 동계청소년올림픽에서는 과거 2023 새만금 잼버리의 패항 사태가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직접 현장을 찾아 전반적인 시설 점검을 하기도 하였다. 한편 2024년 4월 11일, 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국민의힘 여당이 참패를 한 후 사의를 전했다. 하지만 자신의 뒤를 이을 후임이 결정하는데 상당한 난항이 이어지고 있어 아직 사표 수리가 진행이 되지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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