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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진 국회의원 프로필 나이 지역구 부인 자녀 군대 학력 고향

by 얼굴은나의무기 2024. 3. 20.

대한민국 제20, 21대 국회의원을 지닌 박용진 의원은 노동운동가 출신의 정치인으로, 지역구는 서울 강북구 을이며 더불어민주당 소속 정당으로 정계 활동을 하고 있다. 한편 제22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열린 경선에서 조수민 변호사와 공천을 두고 경쟁을 펼쳐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이 과정에서 최근엔 서로 날선 신경전을 펼치면서 조수빈 변호사와 나란히 함께 화제의 인물로 급부상했다.

 

 

 

 

박용진 국회의원 프로필

 

나이 : 1971년 4월 17일 출생. 만 52세

고향 : 전라남도 장수군 번암면 노단리

거주 : 서울특별시 강북구 미아동 SK 북한산 시티

가족 : 아버지, 어머니, 큰형, 작은형, 여동생, 부인 조형숙, 자녀 2남

학력 : 서울화계국민학교 졸업 - 신일중학교 졸업 - 신일고등학교 졸업 - 성균관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사회학 학사 - 성균관대학교 국정관리대학원 행정학 석사

군대 : 제53보병사단 만기 제대

지역구 : 서울 강북구 을

경력 : 성균관대학교 총학생회장 - 민주노동당 전국집행위원 - 민주노동당 대변인 - 진보신당 부대표 - 시민통합당 지도위원 - 민주통합당 대변인 - 민주당 대변인 - 민주당 홍보위원장 - 새정치민주연합 정책위원회 부의장 - 제20대 국회의원 - 더불어민주당 원내부대표 - 제20대 국회 후반기 4차 산업혁명 특별위원회 간사 - 제21대 국회의원 - 더불어민주당 제20대 대통령 선거 경선 후보 - 대한민국대전화 선거대책위원회 공동선거대책위원장 - 더불어민주당 제5차전당대회 당대표 후보 - 더불어민주당 서울특별시당 교육연수위원장

종교 : 천주교

키 : 180센치

혈액형 A형

 

 

 

 

조수민 후보와 경선을 치르던 19일 오전, 당시 보도에 따르면 박용진 의원은 19일 오전에 방송된 KBS라디오 <전격시사> 프로그램에서 조수진 후보는 민변에서 인원 변론을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약한 사람, 코너에 몰린 사람에게 그렇게 말씀하는 것이 예의는 아니라고 판단된다 라며 전했다. 이 같이 박용진 의원이 조수진 후보에게 일침을 가한 계지는 이에 앞서 조수진 후보가 전날 18일, <박시영TV> 유튜브에 출연해 박용진 의원에게 "바보같이 경선에 응하겠다고 했는데 이왕 바보가 될 것이라면 입법권력을 넘겨주면 안 된다는 더 큰 대의를 보고 본인이 밀알이 되어 썩어 사라지는 헌신을 보여주면 된다" 라고 언급했다. 그리고 "민주당이 향후 일심단결하여 모두 단합을 하는 모습, 국민들이 지켜보고 있기에 윤석열 정권을 심판해 줄 수 있다고 느끼게 하는 바보 역할을 해달라고 언급했다. 이에 박용진 의원은 선당후사적 이유로 사퇴를 하려면 조수진 후보가 그만 여기서 물러나는 것이 옳다며 대응했다.

 

 

 

 

또한 계속 이어서 "현재 조수진 후보가 이쪽 동네는 동이 얼마나 있는지, 그리고 저쪽 동네에는 주민수가 얼마나 등록되어 살고 있는지, 삼양동 그 골목길에 어떤 일들이 벌어졌고 벌어지고 있는지, 우리 지역 주문들이 어떤 민원들을 가지고 있는지 파악조차 되지 않은채로 와서 유시민 이사장 말씀대로 배지를 줍는 것에만 집중하고 계시는 것 아닌지 라며 강한 일침을 날린 박용진 의원이다. 그러나 결국 19일, 조수민 후보에게 전략경선에서 패배를 하게 되었고, 공천은 조수민 후보에게 돌아가게 됐다.

 

 

 

 

박용진 국회의원의 첫 정치 시작은 민주노동당, 진보신당에 몸다았던 PD 계열 진보 성향의 정치인이었다. 하지만 이후엔 민주통합당에 합류하면서 2016년 총선, 비로소 원내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고 죽, 더불어민주당 내에서도 진보파에 속하게 되었다. 지금은 민주당 내부의 세대교체론인 97세대의 대표적인 인물 중 한 명이며, 당내 주류 의견에 따르지 않는 경우가 많고 비문재인 비이재명파로 분류되어 있다.

 

 

 

 

전라북도 장수군 번암면 노단리의 마을에서 태어난 박용진 의원은 초등학교 시절에 아버지의 근무지가 전주시로 바뀌게 되면서 전주시 태평동으로 이사를 갔다. 그리고 또다시 아버지가 서울로 전근을 가게 되어 이번엔 서울로 이사를 가 서울화계초등학교로 전학간 뒤 졸업을 하였다. 이후엔 신일중, 신일고등학교를 졸업했으며 고등학교 3학년 때인 1989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결성 되었는데 고등학교 2학년 담임이였떤 이수호 선생님이 결성 주도 인물로 붙잡혔다. 이에 자극받은 학교 학생들과 교내 시위를 주도하게 되었고, 고등학교 내내 1987년 6월 항쟁 이후 분출된 정치, 사회의 민주화 흐름에 민감했던 시절을 보내게 된다.

 

 

 

 

1994년, 성균관대학교 총학생회장으로 당선 되었고, 서총련산하 북부총련 의장직에 임명된다. 그해 여름 전국철도기관사협의회와 서울지하철노동조합, 부산지하철노동조합의 연대 파업을 지원하다 구속이 되어 첫 수감생활을 하게 된다. 100일 만에 집행유예 선고를 받고 풀려난 박용진은 1994년 12월 현역으로 육군에 입대하였고, 제대한 뒤 1997년 마지막 학기를 마치기 위해 복학을 했고 이후 김귀정추모사업회 사무국장으로 활동했다.

 

 

 

 

정계에 본격적으로 입문한 박용진은 2000년 1월, 민주노동당을 창당하였고, 2000년 4월에는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 만 29세의 젊은 나이로 출마했다. 2011년 9월 시민통합당 지도위원으로 창당에 함께 하였으며,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출마하여 당선된다. 2017년 국정감사에서는 이건희 회장의 차명계좌 논란을 제기하여 금융당국의 과세 결정을 이끌어내기도 했으며 이후 21대 총선에서도 바로 지역 단수공천을 받으며 재선을 도전한다. 그리고 높은 득표로 미래통합당 안홍렬 후보를 제치고 당선이 되어 두 번 연속으로 국회의원 연임을 이어가게 된다.

 

 

 

 

이후 비리 유치원 명단 공개 및 유치원 3법 발의, 조국 국면에서의 민주당과의 반대 발언, 박원순 관련 발언, 이승만과 박정희 간련 발언,대선 출마 선언 및 모병제 주장, 박성민 청년비서관 옹호, 전당대회 당대표 후보 출마 등 굵직굵직한 정치적 행보를 보여주었으며, 곧 다가오는 22대 총선을 앞두고 펼친 조수민 후보와의 경선에서 패배하였고, 이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트루먼 쇼를 나만 모르게 찍고 있는 것이 아닌가 라는 심정의 글을 올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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