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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세원 프로필 사망 나이 딸 부인 가족관계 해금연주자 재혼 와이프 아내 데뷔 고향

by 얼굴은나의무기 2024. 7. 4.

 

 

개그맨 겸 최고의 MC로 국내를 호령했던 故 서세원은 1979년 TBC 라디오 개그 콘테스트 참가로 첫 연예계 입문을 하였다. 그리고 1990년대부터 <서세원쇼>를 비롯한 TV 토크쇼 진행자로 나서면서 국민 MC로 명성을 쌓으며 전성기를 구가하였으나 이후 영화 제작비 횡령 의혹 등과 관련 논란에 휩싸였다. 그리고 2014년에는 부인 서정희를 폭행 혐의가 드러나면서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고, 이듬해 부인 서정희와 이혼한 서세원은 1년 뒤  2016년, 무려 23살 연하의 해금연주자 김 모씨와 재혼한 뒤 캄보디아에 정착하여 사망하기까지 계속 거주해왔다.

 

 

 

 

서세원 프로필

 

출생 : 1956년 3월 18일

사망 : 2023년 4월 20일. 향년 67세

고향 : 충청북도 청주시

가족 : 전부인 서정희, 두번째 부인, 첫째 서동주 딸, 둘째 서종우 아들, 셋째 서동수 딸(셋째는 두 번째 아내와 사이에 소생)

신체 : 180센치, 69키로, O형

학력 : 대전삼성국민학교 졸업 - 부산대신중학교 졸업 - 대륜고등학교 졸업 - 경기대학교 인문대학 국어국문학 학사

데뷔 : 1979년 TBC 라디오 개그 콘테스트

종교 : 개신교

 

 

 

 

서세원의 가족관계를 보면 전부인 서정희와 재혼한 와이프를 나뉘어 봐야 하는데, 먼저 첫 번째 결혼 상대로 많이 알고있는 서정희와 결혼 후 슬하에 장녀 서동주와 장남 서종우를 얻었다. 그리고 2014년 서세원의 폭력혐의로 인해 서정희와 이혼 후 2016년 23살 연하의 해금연주자 김 모씨와 재혼 직후 캄보디아로 이민을 떠났다. 이후 2015년에 재혼한 아내와 사이에서 또 하나의 딸을 얻었는데 이름은 서동수라고 하며, 이후 서세원의 사망 후 아내와 딸은 근황 소식 없이 캄보디아에서 조용히 지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세원은 1979년 TBC 라디오 개그 콘테스트를 통해 데뷔하였으나 대부분 활동은 MBC에서 하였는데 <영11>, <청춘행진곡>, <일요일 밤의 대행진> 등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당시 코미디 프로그램은 슬랩스틱이나 바보 연기 등이 주 무기였지만, 전유성이나 서세원 같은 코미디언들이 등장하면서 이른바 몸 개그보다는 말로 웃음을 유발하는 토크형 개그맨들이 사랑을 받기 시작했다.

 

 

 

 

당시 서세원의 초대박 인기 콩트는 바로 <청춘만만세>에서 나왔던 <청춘보감>이라는 코너로, 이 콩트에서 서세원 최고의 유행어로 남게 되는 '산 넘고 물 건너 바다 건너셔...'가 탄생하게 되었다. 또한 인기 연예인을 초대하여 개그를 펼치는 <서세원의 스타데이트>를 진행하기도 했는데 이것은 훗날 대한민국 토크쇼의 교두보 틀을 마련하기도 했다. 서세원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MC로도 유명했는데, 최근 유재석, 신동엽과 같은 개그맨 출신 MC들이 단순히 진행 역할만 맡는 것이 아닌 프로그램 전체를 기획하고 조율하는 주도적인 역할까지 맡을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 준 명 MC였다. 주병진이 본격적으로 뜨기 전 당대 젊은 층으로부터 가장 인기를 구가했던 MC와 프로그램이 <영11>의 서세원이었다.

 

 

 

 

1980년대 중반부터는 김형곤이 <유머 일번지>에서 여러 인기 콩트를 펼치며 전성기 심형래의 대항마 수준으로 올라섰고, 주병진은 버라이어티 예능으로 포맷을 바꿨을 때 메인 MC를 맡으며 개그맨 출신의 MC로서 정점을 찍었다, 물론 1980년대 중반에 압도적인 원톱 개그맨이었던 사람은 후배 심형래였고, 다만 심형래의 전성기가 오기 직전까지 정상급 코미디언 중에서도 서세원의 인기가 최고였던 것은 틀림이 없다.

 

 

 

 

그리고 1980년 후반에는 최양락이 <네로 25시>로 급격이 인기가 부상하자 MBC에서는 그의 대항마로 서세원을 다시 내세웠고, 1990년에는 SBS 개국과 맞물려 중견급 코미디어들이 방송사 대이동을 거친 끝에 MBC에서 활동하던 서세원은 SBS로 옮겨 활동하기 시작했다. 이후 KBS로 다시 활동 무대를 옮겼고, 심형래와 임하룡, 김형곤이 떠난 KBS 코미디계에서 거의 리더이자 가장 선배 격으로 활동하게 되었다.

 

 

 

 

이후 서세원은 <서세원의 스타 데이트>를 진행항 경험을 바탕으로 1990년대 중반부터 <서세원쇼>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기 시작한다. 가장 유행했던 코너인 <토크박스>는 게스트 출연자들이 서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서 서세원이 직집 토크 순위를 매기는 방식인데, 이 토크박스는 당시 IMF로 힘들고 우울해 하던 국민들에게 조금이라도 웃음을 주고 즐거움을 악녀주었던 프로그램으로 큰 사랑을 받았다. 당시 개가수로 불리우던 컨츄리꼬꼬의 탁재훈과 신정환, 그리고 당시 무명이었던 유재석이 토크박스에서 활약을 계기로 터닝포인트를 맞이하게 되었다.

 

 

 

 

또한 서세원의 또다른 대표작은 <공포체럼 돌아보지마>가 있는데, 이 프로그램은 시골의 한 정자에서 여성 게스트를 초대하여 토크쇼 형태로 이야기를 주고 받다가 갑자기 귀신이 등장한다던가 깜짝 놀래켜주는 것이 포인트. 그리고 게스트들이 상당히 화려한데 당대 최고의 인기를 달리는 여배우, 여가수들이 대거 출연했었다.

 

 

 

 

이렇게 2000년대 초반까지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서세원은 위 서술로 남긴 바와 같이 캄보디아로 떠나 이 곳에서 정작 후 제2의 인생을 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망하기 직전 알려진 근황은 곧 다가오는 동남아시안게임과 장애인 아시안게임 방송 중계권을 낙찰받아 캄보디아에서 사업을 진행 중이었고, 하지만 사기를 당해서 경제적으로 궁핍한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고 한다. 진행하던 사업도 부진한 상황이었으며, 거기에 당뇨 합병증까지 찾아와 건강이 매우 좋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서세원은 수액을 맞다가 쇼크사로 사망했다는 소식이 알려지게 되었는데, 이전 논란들 때문인지 방송가나 동료들 사이에 고인을 애도하는 분위기가 거의 형성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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