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Ent

가수 태진아 나이 아내 옥경이 부인 아들 가족관계 치매 병원 노래모음 고향 종교

by 얼굴은나의무기 2024. 6. 20.

 

 

가수 태진아는 1973년 '추억의 푸른언덕' 노래로 신인상을 차지하며 주목을 받았지만 이후 불미스러운 스캔들을 겪으며 미국으로 떠나 지내다가 가정을 이루고 한국으로 돌아와 복귀를 하였다. 이후에는 '옥경이'를 비롯해 '노란 손수건', '미안 미안해', '거울도 안 보는 여자', '선희의 가방', '사모곡', '사랑은 장난이 아니야', '동반자' 등 노래들을 연이어 히트시키면서 대한민국 트로트의 대중화를 이끌었다. 그리고 1990년대 들어서 라이벌 송대관을 포함해 설운도, 현철과 함께 '트로트 4대 천왕'으로 불리우며 전성기를 구가하였고, 또한 계속 한 자리에 정체되지 않으며 젊은 가수 비, 제시, 강남 등과 과감한 콜라보를 이뤄 활동하는 등 젊은 팬층까지 확보한 트롯가수로서 유일무이한 행보를 보여주었다. 최근엔 아내 옥경이의 치매 투병으로 인해 대중들의 큰 관심을 받고 있으며, 아들 이루는 음주운전 이슈로 인해 화제에 오르기도 햇다.

 

 

 

 

태진아 프로필

 

나이 : 1953년 2월 16일 출생. 71세

고향 : 충청북도 보은군 탄부면 하장리

가족관계 : 아버지 조금복(1921년생. 2005년 폐암으로 별세), 누나 조남순, 남동생 조방원(1956년생) 외 7남매, 아내 이옥형(대중들에게는 옥경이로 알려져있다), 자녀 첫째 아들 조유명(의붓아들), 둘째 아들 이루(친아들. 가수 및 배우 활동)

학력 : 관기국민학교 졸업 - 중학교 졸업학력 검정고시 합격 - 고등학교 졸업학력 검정고시 합격 -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영어영문학 학사

본명: 조방헌

신체 : 키 175센치, 체중 68키로

혈액형 : B형

데뷔 : 1973년 '내 마음 급행 열차'

소속사 : 진아엔터테인먼트(설립자이자 대표)

종교 : 개신교

 

 

 

 

태진아의 아내 옥경이(본명 이옥형)가 최근 치매 투병중인 근황들이 알려지면서 주위의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옥경이의 나이는 남편 태진아보다 1살이 어린 1952년생인 72세로, 가수 이미자의 5촌 조카로도 알려져 있다. 태진아를 만나기 전에 결혼을 하고 이혼을 한 차례 해서 현재의 첫째 아들은 전남편의 소생으로 태진아에게는 의붓 아들이 된다. 그리고 첫째 아들이 전남편과 같이 살지 않고 자신의 곁에서 매니지먼트를 거들었고 이에 태진아는 첫째 아들을 친아들처럼 대하며 길렀다고 한다.

 

 

 

 

한편 부인 옥경이는 '옥경이'라는 노래처럼 실제 이름이 '옥경'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처음 만났을 때 소개 시켜준 사람과 사귈때 만난 처가식구들 조차도 아내를 옥경이라고 불러서 태진아도 옥경이라고 계속 부르다가 결혼하고 나서야 겨우 실제 이름이 이옥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부르기에 어감상 옥형이 보다 옥경이가 더 정감이 가서 계속 옥경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하며, 그래서 노래도 그렇게 작사작곡을 한게 '옥경이' 노래가 탄생 된 것이라고 한다. 태진아가 옥경이를 평소에 얼마나 위하고 애정이 넘치는지는 얼마전 치매 병원에 입원해 있는 부인 옥경이와 환자복을 커플처럼 맞춰 입고서 다정하게 찍은 사진을 보면 어느정도인지 알 수 있다.

 

 

 

 

태진아는 누구나 그가 가수로 처음 연예계에 입문했을 것이라 당연시하게 생각할텐데 실제 그는 가수로 데뷔하기 전인 17살 때 배우 오지명과 같이 <쌍태양>이라는 영화를 찍었으며, 당시 일주일 동안 밤을 새가면서 촬영을 했는데 이후 기대를 품고서 극장에서 보니 "껌사세요" 대사와 함께 한 컷이 다였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예전 SBS 드라마 <사랑은 아무나 하나> 제작발표회 때 깜짝 등장하여 밝혔는데, 영화계가 날 버려 가요계로 떠났다면서 연기에 꿈이 조금 있었다고 털어놨다. 이어 기회만 된다면 이 드라마에 한 두번 정도 출연해보고 싶다며 덧붙여 웃음을 선사하기도 했다.

 

 

 

 

태진아는 본격적으로 가수 생활을 시작한게 1973년 '추억의 푸른언덕'이 뜨면서 본격 가수의 길을 걷게 되었고, 하지만 2년 뒤 불미의 사건으로 인해 방송 출연 금지가 내려져 미국에 있다가 절친 송대관의 도움으로 교포 사회의 밤무대 활동 등을 하며 가정을 꾸리다가 1980년 '보내는 마음' 앨범을 냈지만 실패를 하였다. 이후 1984년 1월 방송 출연 금지가 풀렸고, 4년 뒤인 1988년 한국으로 귀국하여 다시 활동을 꿈꿨으나 별다른 성과를 내진 못했다. 그러던 1989년 '옥경이' 노래가 초대박을 터뜨리면서 대한민국 트롯계가 전부 태진아를 주목하게 되었다.

 

 

 

 

그렇게 '옥경이'란 곡이 대히트를 치자, 이후 '거울도 안보는 여자'가 <가요톱10>에서 골든컵을 수상하는 등 승승장구를 이어갔고, 후속곡인 '미안 미안해' 또한 수차례 1위를 차지하면서 최고 전성기 시절을 달리게 되었다. 2010년에는 송대관을 이어 제5대 대한가수협회의 회장 자리에 취임하였고, 취임 기간에 카라 전속계약해지 통보 사건을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중래를 해 사태를 안정시키는 것에 공을 세우면서 이에 카라의 팬덤 카밀리아에서는 태진아를 향해 감사함을 전하기도 했다. 현재까지도 진아엔터테인먼트를 운영하고 있으며, 이전에는 의붓아들이 자화사 YMC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해 운영하였으나 지금은 해산되어 사라졌다.

 

 

 

 

현재는 최고의 트로트 가수로 돈과 명예 모두 가진 태진아이지만 과거 어린시절에는 너무도 가난해 물로 배를 채우면서 자랐다고 한다. 초등학교 다닐 때까지 도시락도 없이 등교하였고, 명절 때는 고기 한 번 제대로 먹지 못한 채 보냈다고 한다. 그러다가 초등학교 졸업한 시기인 1966년에 무작정 서울로 상경하여 중국집 식당 배달업을 했는데, 하루는 너무나 배고픈 나머지 배달하려고 들고 있던 군만두를 몰래 몇개 건져먹다가 어떻해서든 수를 써서 돌려막기를 했지만 결국 사장에게 걸려 크게 꾸중을 들었다고 한다.

 

 

 

 

'트로트 4대 천왕' 중에 한 명인 송대관하고는 방송상에서 라이벌이자 앙숙 캐릭터로 비춰지고 있지만 실제 두 사람은 굉장히 둘도 없는 친한 사이다. 방송에서 서로 디스하고 티격태격 싸우는 모습을 그저 재미를 위한 모습일 뿐 실제로는 서로 차도 빌려줄 만큼 친분이 깊은 사이다. 지금과 같이 이렇게 친분이 두텁게 쌓인 계기는 아무래도 태진아와 송대관 둘 다 미국에서 같이 고생한 시기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추측이 있다.

 

 

 

 

태진아는 2004년 9월 11일 오후에 공연 스케줄을 위해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전라북도 고창군으로 향하던 중 부안톨게이트 부근에서 아찔한 큰 대형 교통사고를 당했다. 사고 당일에 비가 많이 내리고 있었으며 하필 공연도 무려 네 곳이나 잡혀있어 스케줄이 빡빡했던 날이었다고 한다. 그런 상황에서 매니저는 가속을 할 수 밖에 없어 속도를 냈고, 이에 빗물에 타이어가 수막 현상으로 미끄러져 도로를 탈선해 가드레일 들이박고 언덕 및 낭떠러지에 추락하고 만 것. 차는 사고의 충격으로 거의 폐차 수준이였지만 다행히도 차 안에 있던 태진아와 매니저는 경미한 타박상에 그쳤다.

 

 

 

 

태진아 노래모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