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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허참 프로필 사망 나이 자녀 가족 아내는 지금 고향 본명 가족오락관

by 얼굴은나의무기 2024. 6. 7.

 

 

허참은 1971년 TBC <7대 가수쇼> MC로 데뷔하였으며, 이후 <쇼쇼쇼>, <도전 주부가요수타>, <가요청백전>, <올스타 청백전> 등 프로그램에 진행을 맡으며 국민 MC로 도약하였다. 1984년부터 2009년까지 무려 25년간 KBS <가족오락관> MC를 맡아 큰 사랑을 받았으며, 가족오락관 종영한 후에는 SBS <트로트 팔도강산>, KBS <도전 주부가요스타>, 경인방송 <8도 노래자랑>, 엠넷 <골든 힛트송> 등 음악 프로그램 MC를 맡아 출연했다. 그리고 KBS2 <불후의 명곡> 등 출연하여 근황을 알리면서 꾸준히 생을 마감할 때까지 방송인으로서 족적을 남겼다.

 

 

 

 

허참 프로필

 

출생 : 1949년 11월 30일

사망 : 2022년 2월 1일. 향년 나이 72세

묘소 : 강원도 춘천시 서면 노동길 181 경춘공원묘원

고향 : 황해도

본명 : 이상룡

가족 : 아버지 이광연(2004년 사망), 어머니 이명복(2021년 사망), 자녀 1남 3녀

신체 : 172센치, 70키로

학력 : 영남상업고등학교 졸업 - 동아방송대학교 경여학 학사 - 중앙대학교 국제경영대학원 경영학 석사과정 수료

종교 : 개신교

직업 : 방송인, 가수, 배우

 

 

 

 

허참은 어릴 때부터 라디오 드라마에 심취하여 성우 흉내로 사람들을 웃기는데 능했고, 학창시절 다니던 웅변학원에서 발음법과 발성법, 화술을 배우면서 우렁차고 또렷한 목소리와 재치있는 말솜씨를 갖게 되었다. 1970년 영남상고를 졸업하고 바로 군대에 입대한 허참은 이등병 때부터 부대 웅변대회에서 1등을 타는 등 두각을 나타내며 문화선전대 진행요원으로 뽑혔고, 군 생활 계속 내내 위문공연 MC를 맡아 활동하였다. 1973년 전역한 이후에는 방송인이 되고 싶어 무작정 서울로 상경한 허참은 처음엔 군대나 고향 친구 집을 떠돌다가 정동 MBC 부근에서 구멍가게를 하던 친구 집에 더부살이로 정착하여 채소나 생선 배달 등 잡일로 생계를 꾸리며 방송국 근처에서 계속 꿈을 키워 나갔다.

 

 

 

 

그러던 어느날 군대 친구와 종로에 놀러간 허참은 당시 이종환이 운영하던 통기타 라이브 클럽 쉘부르에 들렀다가 통기타 그룹 쉐그린 공연 후 행운권 추첨에 당첨되어 무대로 올라가게 되었는데, 문선대 MC 3년 경력을 살려 전혀 떨지 않고 오히려 뻔뻔하게 보일 만큼 입담을 보여주며 무대의 가수들과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허참의 재능을 알아본 이종환은 그를 쉘부르의 MC 겸 DJ로 채용하여 그의 명성은 높아졌고, 나중엔 허참 쇼 라는 자신만의 쇼를 열어 매번 쉘부르 입장권이 매진 될 만큼 유명세를 치뤘다. 결국 1974년, 쉘부르의 손님으로 그를 지켜보던 당시 MBC PD 겸 DJ 박원웅이 허참을 새 라디오 <청춘은 즐거워> MC로 영입하면서 본격적으로 방송계에 데뷔하게 되었다.

 

 

 

 

이후 MBC 라디오의 MC와 DJ로 활약하던 허참은 1976년 경 MBC 내 모든 프로그램의 사회자를 아나운서로 교체하여 일자리를 잃고 신발 장사를 하는 등 잠시 방송계를 떠나있다가 TBC의 스카웃 제의를 받고서 이적하여 7대 가수쇼 MC로 TV무대에 진출하였다. 그 이듬해에는 1977년부터 TBC의 간판 쇼 프로 <쇼쇼쇼>의 MC를 맡으며 명실상부 당대 최고의 MC로 떠오르게 되었다. 그 외에 DBS의 <허참과 이 밤을> 등으 MC로도 활동하였고, 80년대 KBS 시절은 반 개그맨과 반 진행자를 더한 포지션이어서 코미디 프로그램의 꽁트도 상당히 여러 출연하였다. 가족오락관을 하면서도 종종 개그맨을 하는 모습도 볼수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진행자 이미지에 나이도 30대였기에 망가지는 모습 보다 망가지는 20대 후배 개그맨들을 극 중에서 말리다가 당하는 역할이었다.

 

 

 

 

허참을 떠올리면 한국인들은 대부분 <가족오락관> 프로그램부터 떠올린다. 또 반대로 가족오락관 하면 MC 허참을 떠올리는데 그만큼 허참에게 있어서 가족오락관을 빼놓을 수가 없다. 언론 통폐합 후에도 TBC 때부터 MC를 맡아오던 <쇼쇼쇼> 등 여러 프로그램의 진행자로 활동하다가 1984년 제1회 방송부터 2009년 마지막 방송까지 KBS 가족오락관의 MC를 맡게 되었으며 국민적 사랑을 받는 예능 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하면서 진행자인 허참 또한 큰 인기를 얻게 되었다. 1987년에는 교통사고를 당해서 녹화 펑크를 낸 적이 있었지만 여성 MC가 스무 명이 넘게 바뀔 동안 허참은 홀로 자신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면서 프로그램의 마스코트가 되었다. 2009년 4월 부로 25년의 세월을 뒤로 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질 때, 30대 진행을 맡기 시작해서 60대 마무리하게 된 허참은 마지막 녹화를 끝내고 나서, 한 주부 방청객이 '아저씨 잘 가요'라고 인사했는데 마치 은퇴하는 기분이 들었다며 당시 종영 소감을 전하기도 했다.

 

 

 

 

<가족오락관> 종영한 이후 2011년에는 잠시 동안 아이넷TV <성인가요콘서트> MC를 맡기도 했으며 2012년 말부터 2015년 초까지 지역 민방 <전국 TOP 10 가요쇼> MC를 맡으면서 음악 프로그램 MC로 활동하였다. 그리고 경기 남양주시 별내동에서 부업으로 고깃집을 운영하기도 했으며, 2015년 8월에는 대부업체 미즈사랑 CF에 출연하여 사채 CF에 출연한 연예인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2017년 2월에는 <복면가왕>에 출연하여 '방귀대장 스컹크' 라는 가명으로 등장해 '사슴이 꽃보다 아름다워'와 이광조의 '오늘 같은 밤'을 같이 부른 뒤 어니언스의 '편지'를 부르면서 정체를 밝혔다.

 

 

 

 

2022년 설날 당일이었던 2월 1일 낮 12시, 지병인 간암으로 인해 향년 72세로 사망하였다. 빈소는 서울에 있는 서울아산병원에 마련되었다. 허참 본인이 주변 사람들에게 해를 끼칠까 싶어 간암 투병 사실을 지인은 물론 가족들에게까지 비밀로 했다고 한다. 그런데 조용필, 이홍렬, 강진 같은 극소수의 최측근 인사들은 알고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으며, 강진은 <아침마당>에 출연하여 그가 사망하기 몇주 전에 전조증상을 봤음에도 심각성을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선배 송해와 함께 원로 MC로 손꼽히는 국민MC로 불렸지만, 먼저 세상을 떠나게 된 허참. 송해는 생전에 자신이 죽거든 <전국노래자랑>의 MC를 허참에게 물려주고 싶다는 말을 하기도 했었다. 실제로 허참은 2012년에 한 차례 임시 진행을 한 적이 있었으며, 허참이 사망하고 4개월 뒤 송해는 세상을 떠났다.

 

 

 

 

허참은 <가족오락관> 프로그램으로 최장수 MC 기록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종영한 이후 송해가 <전국노래자랑>의 MC를 계속 맡으면서 2019 11월 3일자로 전국노래자랑의 송해가 기록을 경신하였다. 그래서 송해가 전국노래자랑 마이크를 내려놓을 경우 가장 유력한 후임 MC로 거론되었던 인물이 허참이었던 것이었는데 2022년 향년 72세의 이른 나이로 사망하게 되면서 이루어질 수 없게 되어 많은 이들이 그의 사망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여담으로 허참은 예전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송해에 대해 '지갑을 잘 여는 선배' 라고 표현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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