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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심수봉 나이 프로필 남편 자녀 가족 고향 노래모음 소속사 학력 본명

by 얼굴은나의무기 2024. 6. 6.

 

 

가수 심수봉은 1978년 대학개그제에서 '그때 그 사람' 노래로 데뷔하였다. 하지만 1979년 10.26 사건에 휘말리면서 가수 인생의 가시밭길이 시작되었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피살 당할 때 당시 연회에서 노래를 불렀던 심수봉은 온갖 루머들과 방송금지 등으로 고통받으며 지냈다. 그러나 이후 '사랑밖에 난 몰라', '미워요',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등 히트곡을 보유한 최고의 가수로 우뚝 서게 되었고, 가수 뿐만 아닌 대부분 히트곡들을 직접 자작곡을 하면서 뮤지션으로도 인정받았다.

 

 

 

 

심수봉 프로필

 

나이 : 1955년 8월 28일 출생. 68세

본명 : 심민경

고향 : 충청남도 서산시

가족 : 아버지(심수봉이 어릴 때 사망), 어머니, 언니, 이부 남동생, 이부 여동생

결혼 : 남편 김호경, 자녀 2남 1녀

학력 : 인화여자고등학교 졸업 - 명지대학교 경영학 학사

데뷔 : 1978년 MBC 대학가요제 '그때 그 사람'

소속사 : 라이트웨이브 엔터테인먼트, 루체 엔터테인먼트

종교 : 개신교

 

 

 

 

심수봉은 현재 남편이 재혼한 두 번째 남편이며, 남편 또한 이혼 후 심수봉을 만나 재혼한 것이다. 현재 남편 직업은 MBC 라디오 PD로 근무하고 있으며 인터뷰에 따르면, 어머니도 과부고 본인도 어릴 때 삼촌한테 학대받아 사랑븓은 기억이 적던 심수봉이 짝사랑하다 먼저 고백했다고 한다. 다만 남편이 군사정권 시절 감옥에도 갔다온 운동권 출신이라 그런지 사랑 표현에 서툴러 지금도 사랑에 목마르다고 밝혔다. 그리고 심수봉의 언니 손자가 <불타는 트롯맨>의 가수 손태진이며, 심수봉의 어머니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재혼을 하였는데 재혼한 새아버지와 1남 1녀를 출산해 이부 남녀동생이 한 명씩 있다.

 

 

 

 

심수봉은 증조부 선조 때부터 음악을 했다고 하며, 아버지, 큰아버지, 고모 등 모두가 음악을 했을 정도로 음악가 집안이다. 심수봉의 처음 주 전공은 재즈였으며, 당시 최고의 음악가 정도가 되어야 설 수 있다는 미8군 무대에 로큰롤 밴드 '논스톱'의 드러머로 서기도 했다. 심수봉을 트로트 가수로만 아는 사람들은 그녀가 드럼을 치는 모습에 반전 모습을 깜짝 놀라기도 하는데 이런 뒷 과거들의 행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심수봉은 만 20세 되던 시기에 대입준비를 시작하게 되고, 레스토랑에서 피아노 치고 노래하는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1960년대에 유명했던 밴드 마스터 엄토미의 부탁으로 1973년 보광동의 한 개인 파티에서 대타로 피아노 반주를 하고 미소라 히바리 노래를 하나 불렀는데 그 연회가 마침 1974년 자신이 실각하기 전 박정희 대통령의 술 시중 돕는 여성들을 섭외하는 역할을 하던 박종규 대통령 경호실장이 주최했기 때문에 그의 눈에 띄어 박종규가 여는 비밀 사교 파티에 자주 불려갔다가 1975년 대통령 만찬 자리에 불려가기 시작했다.

 

 

 

 

결국 재수한 끝에 1976년 명지지대학교 경영학과에 합격해 진학하였으며 재학 도중 3학년 때인 1978년 <대학 가요제>에 참가하였다. 당시 대부분의 대학가요제에 참여하는 대학생들의 음악적 성향이 포크, 록 쪽이였는데 심수봉은 자신의 주 전공인 재즈가 아닌 트로트로 도전장을 내밀었으나 수상하지는 못했다. 심사위원들이 좋은 점수를 안 준 이유는 '너무 프로다웠다' 라고 밝혔는데, 대학가요제는 대학생의 풋풋함이 있어야 했기에 심수봉의 세련된 음악과는 상당히 대학가요제 컨셉과 분위기하고 차이가 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후 심수봉이 <대학가요제>에서 부른 '그때 그 사람'이 대히트를 치면서 가수로서 입지를 굳히게 되었고, 여담으로 이때 심수봉과 겨뤘던 출연자들의 이름값이 어마무시한데 임백천, 노사연, 배철수 등이다. 이들도 대상은 못 탔으나 다들 이후 가수로서 큰 한 획을 그었으며, 훗날 노사연이 밝히기를 1회에 샌드페블즈가 대상을 타자 "뭐야, 저 정도면 우리도 할 수 있겠는데" 라고 생각해 2회 때 실력자들이 대거 참가했던 것이라고 한다. 결국 대상은 부산대학교 중창단 썰물이 수상하였고 노사연이 금상, 배철수가 은상을 받았다.

 

 

 

 

1979년 10월 26일, 모델 신재순과 함께 궁정동의 안가에서 열린 박정희 대통령 술자리에 불려간 심수봉은 갑자기 김재규 부장이 쏜 총에 사망한 박정희 모습을 눈 앞에서 지켜보았다. 그렇게 박정희 대통령 암살 이후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합동수사본부가 10.26 사건을 강도 높게 조사하면서 심수봉 또한 현장에 있던 참고인이자 목격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았다. 결국 이 일로 방송활동 금지가 내려지게 되었으며, 1984년이 되어서야 방송활동 금지가 풀려 또 다른 대표곡인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노래가 히트 치면서 다시 재기를 노린 심수봉이다.

 

 

 

 

그렇게 수년 동안 방송활동 금지 후 해제가 되면서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로 성공적인 복귀를 하게 된 심수봉은 이후 '첫 아이의 얼굴을 보면서 이 아이가 행복할까' 라는 생각을 하다가 무궁화가 떠올라 만들어 이듬해 발표한 '무궁화' 곡이 국민을 선동한다는 말도 안되는 이유로 방송된 지 단 하루만에 금지곡이 되어버렸다. 이후 1987년에는 '사랑밖에 난 몰라'가 히트를 기록했고, 이후에도 꾸준히 콘서트와 음반 발매를 하면서 현재까지도 가수 및 뮤지션으로 활동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때까지 박정희 대통령의 유족들 중 자신은 찾아온 적이 없었는데, 1992년 박근령이 도울 일이 없냐며 사람을 보내면서 과거의 서운했던 앙금이 조금 풀렸다고 한다.

 

 

 

 

1995년 MBC에서 <제4공화국> 드라마를 제작할 때 10.26 사건 당시 사황을 직접 감수했다. 당시 심수봉의 현 남편이 MBC PD로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으며, 촬영 당시 처음에 금테 안경을 쓰던 김재규 역의 박근형은 주언을 들은 뒤 검은 안경으로 바꿔 썼고, 이 외에도 문갑의 위치나 높이, 대통령의 의자 모양까지 세부적으로 알려줘 제작진이 소품을 심수봉이 말한대로 다시 준비했다는 비하인드 이야기가 있다.

 

 

 

 

2011년에 방영한 <불후의 명곡>에서 첫방송의 첫번째 전설로 등장하였으며, 2021년에는 <한가위 대기획 피어나라 대한민국 심수봉>을 KBS2에서 선보였다. 이후 MBN에서 방영한 <불타는 트롯맨> 준결승전에서 남진, 주현미와 같이 전설의 심사위원 자격으로 출연하였으며, 그리고 해당 프로그램에서 신곡 부부 행진곡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리고 불타는 트롯맨 종영 후, 후속으로 방영된 <불타는 장미단> 프로그램에서 2023년 5월 2일에 첫 출연하였다. 당시 조카손자인 손태진과 '그때 그 사람' 노래를 듀엣으로 불러 화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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