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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경영 프로필 나이 하늘궁 국회의원 부인 자녀 가족 고향 학력 군대 재산

by 얼굴은나의무기 2024. 4. 5.

국가혁명당 비례대표 허경영 후보는 최근 자신이 운영하고 거주하고 있는 '하늘궁'이 관광지 등 사용시에만 가능한 갈색 도로표지판을 불법으로 설치한 사실이 밝혀져 눈길을 모으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지난 4일 20일, 장흥자생수목으로 가는 길목인 경기 양주시 장흥면 권율로 인근에 위치한 도로표지판에 갈색 바탕에 하얀 글자로 <허경영 하늘궁 HEAVEN PALACE" 라고 적혀있었고, 이 표지판은 화살표로 좌측을 가리키며 1km 방향에 허경영 하늘궁이 있다면서 안내를 하고 있다는 것. 이 표지판은 인근에 있는 장흥자생수목 위치를 안내하고 있는 갈색 표지판과 유사하여 논란이 불거지게 되었다.

 

 

 

 

허경영 프로필

 

나이 : 1947년 7월 13일 출생. 만 76세

고향 : 경상남도 밀양시

가족 : 부인, 자녀 3남 1녀

학력 : 지수초등학교 졸업 - 서울협성고등공민학교 졸업 - 서울협성상업전수학교 졸업 -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법학 학사 - 동국대학교 행정대학원 행정학 석사

군대 : 육군 제30기계화보병사단 병장 만기 제대

재산 : 481억 5천만원

현직 : 국가혁명당 명예대표, 한국국제연합봉사단 수석부총재 강연업

악력 : 박정희사상연구소 소장 - (사)남북문화교류협회 부회장 - 한국전쟁방지국민연합 총재 - 새마을정신혁명운동중앙회 총재 - 민주공화당 총재 - 제15대 대통령 후보 - 제16대 대통령 선거 후보 - 경제공화당 총재 - 제17대 대통령 후보 - 국가혁명당 서울특별시장 후보 - 국가혁명당 대통령 후보

 

 

 

 

허경영 대표의 나이는 호적상 1947년생으로 확인되고 있지만 본인 주장에 따르면 1950년 1월 1일 태어났다고 한다. 또한 고향도 호적에는 경남 밀양시로 등재되어 있지만, 당시 태어난 직후에 바로 부모님의 고향인 경남 진주시오 옮겨 유년시절과 학창시절을 모두 보냈기에 실질적인 고향은 밀양과 진주 두 곳이라 할 수 있다. 다만 허경영 본인 주장으로는 서울의 중랑천 다리 밑이 자신의 고향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허경영의 처음 선거 출마는 1987년, 신민당 후보로 대선 출마를 시도한 것이다. 하지만 당시 예삐후보로 등록을 했지만 기탁금 문제로 인해 최종 후보에는 등록되지 못하여 출마에 실패했다. 참고로 허경영의 당시 소속 정당이었던 신민당은 김영삼과 김대중이 속해 있었던 신민당, 신한민주당과 당명이 같지만 아무 관련이 없는 정당이다.

 

 

 

 

1991년 치뤄진 지방선거에서는, 당시 지선은 3월에 치러진 기초의원선거와 6월에 치러진 광역의원선거로 나뉘어져서 선거를 실시했는데, 허경영은 3월 기초의원 선거 때 무소속으로 은평구 갈현1동 기초의원에 출마 후 낙선을 하였다. 이후 6월 광역의원 선거 때 민중당 소속으로 재차 은평구 광역의원에 출마했지만 또 다시 낙선의 쓴 맛을 보게 되었다.이후 14대 대통령 선거 때는 진리평화당 소속으로 대선 후보에 출마 예정이었지만 기탁금이 부족해 출마를 포기하고 만다.

 

 

 

 

1997년, 15대 대선이 시작되자 공화당 소속으로 출마를 하게 된 허경영 대표. 그는 후보 7명 중에 득표수 7위를 차지하여 낙선하고 만다. 당시 공약은 조선왕조 부활, 핵주권 회복, 경기도를 서울시에 합병. 대통령 명칭을 국민대표 명칭으로 변경 등을 공약으로 걸어 주목을 끌었다. 이후 16대 대선에는 민주공화당 후보로 출마 계획을 짜고 있었지만 차후 대권을 더 튼실히 준비하겠다는 명복으로 출마를 포기하였고, 그리고 이후엔 새천년민주당의 노무현 후보를 지지하였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민주공화당 소속으로 비례대표 1번으로 출마했지만 저조한 득표율을 기록하면서 다시 또 낙선의 고배를 마시고 만다. 이후 17대 대선에 출마한 허경영 대표는 지난 15대 대선 당시 김대중, 이회창, 이인제 후보까지 3강 대결에 묻혀 주목을 받지 못했으나 17대 대선에서는 이명박이 독주를 하던 선거였기에 허경영 후보의 존재감이 더 지난 선거때보다 두드러졌다. 그리고 18대 국회의원 선거는 당시 허위사실 유포죄로 구속을 당해 출마를 포기했으며 18대 대선 또한 징역형을 받게 되면서 10년 동안 피선거권이 박탈되어 대선 출마를 하지 못했다. 이후 19대 대선 역시 피선거권 박탈 기간이 남아있어 출마가 불가했으며 당시 자신의 페이스북에 19대 대선 국민 여론조사를 올렸는데 자신이 90%이상 나와 만약 출마했다면 대통령이 되었을 것이라고 올렸다. 물론 이는 본인이 만든 여론조사로 신뢰성 0%라고 볼 수 있다.

 

 

 

 

21대 총선에 피선거권을 회복하여 출마를 한 허경영 대표는 국가혁명당을 창당하면서 총력을 기울었으며, 만약 총 의원석인 151석을 획득하지 못한다면 당선자들은 전부 사퇴할 것이라며 엄청난 포부와 자신감을 내비췄다. 그러나 선거 결과는 아무도 당선되지 못한채 0석을 기록하였다. 이후에는 2021년 배보선 출마, 2022년 20대 대선 출마, 2024년 22대 국회의원 선거 출마까지 계속하여 정치인의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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