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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희룡 프로필 나이 국토부장관 국회의원 부인 강윤형 자녀 학력 고향 군대 재산

by 얼굴은나의무기 2024. 3. 29.

원희룡 전 국토부장관은 법조계 출신의 정치인으로, 과거에는 16대, 17대, 18대 국회의원을 지녔다. 그리고 37대, 38대 제주특별자치도지사를 지녔으며, 세계지방정부연합 아시아태평양지부의 대표 회장직까지 역임했다. 지난 17대 대선 당시 경선에서 이명박, 박근혜에 이어서 다음 주자로 달리면서 계속 대권 잠재적 인물로 불려져 왔는데 그당시에 홍준표도 원희룡과 같이 17대 대선부터 20대 대선 경선까지 계속 대권 잠룡으로 불렸다.

 

 

 

 

한편 20대 대선 국면에서는 국민의힘 선거대본부에서 정책본부장에 임명 되었고,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이후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기획위원장을 맡은 뒤 국토교통부장관으로 부임되었다. 그리고 극토부장관 자리를 사임한 후 인천 계양구 을 지역구에 22대 국회의원 국민의힘 후보로 출마하여 같은 지역구에 출마하는 더불어민주당의 이재명 대표와 경쟁하게 되었다.

 

 

 

 

원희룡 프로필

 

나이 : 1964년 2월 14일 출생. 만 60세

고향 : 제주틀별자치도 서귀포시 중문동

집 : 인천광역시 계양구 동양동 한진해모로

가족 : 아버지, 어머니, 형제 2남 4녀 중 차남, 부인 강윤형, 자녀 큰 딸, 작은 딸

군대 : 면제(우 증족 족지관절 족지강짐, 2개 족지이상)

학력 : 중문국민학교 졸업 - 중문중학교 졸업 - 제주제일고등학교 졸업 -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공법학 학사 - 한양대학교 언론정보대학원 뉴미디어학 석사 - 제주대학교 정치학 명예박사 - 동국대학교 행정학 명예박사

현직 : 국민의힘 공동선거대책위원장, 국민의힘 인천 계양구 을 국회의원 후보

 

 

 

 

약력

 

인천 주안공단 경동산업 생산직 노동자 - 제34회 사법시험 합격 - 제24기 사법연수원 수료 - 서울지방검찰청 검사 - 수원지방검찰청 여주지청 검사 - 부산지방검찰청 검사 - 법무법인 춘추 변호사 - 제16대 국회의원 서울 양천구 갑 한나라당 - 한나라당 중앙선대위 사이버본부장 - 한나랑 서울시선대위 홍보본부장 - 한나라당 기획위원장 - 제17대 국회의원 서울 양천구 갑 한나라당 - 미래를 위한 청년연대 대표 - 국회 미래산업연구회장 - 한나라당 수석최고위원 - 한국지식정보산업협회장 - 한나라당 선거대책본부장 - 한나라당 이명박 대통령 후보 중앙선대위 부위원장 - 한나라당 이명박 대통령 후보 중앙선대위 정년 본부장 - 제18대 국회의원 서울양천구 갑 한나라당 - 한일의원연맹 한국측 부회장 - 한나라당 쇄신특별위원장 - 저탄소녹색성장국민포럼 대표 - 국회외교통상통일위원장 제18대 국회 후반기 - 한나라당 사무총장 - 한나라당 최고위원 - 새누리당 보수혁신특위 자문위원 - 제37, 38대 제주특별자치도지사 - 미래통합당 최고위원 - 살리는 선대위 정책총괄본부장 - 국민의힘 선거대책본부 정책본부장 -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기획위원장 - 제7대 국토교통부장관 - 국민의힘 공동선거대책위원장

 

 

 

 

전 국토부장관 원희룡 후보는 제주도 남제주군의 14대째 살고 있는 원주 원씨 토박이 집안에서 2남 4녀 남매 중에 차남으로 태어났고 고등학교 졸업시까지 제주도에서 모두 보냈다. 특히 고등학교 시절에는 전교 1등을 놓친적이 없을 만큼 공부를 상당히 잘했고, 전국에서 치른 12차례 시험에서 모두 수석을 차지하며 기대를 모았다. 그러던 중 1982학년도 제1회 대학입학 학력고사에서 수석을 차지한 것으로 언론의 관심을 뜨겁게 받은 과거가 있다.

 

 

 

 

1982년, 대학 생활을 하던 중에 신군부 독재의 폭압적인 정치현실과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실을 알게 되고, 대학 1학년 때는 서울대학교 인문대학이 중심이 된 지하서클 사회복지연구회에 가입하여 체계적으로 사회과학을 연구, 공부를 하면서 사회적 전체분야에 눈을 뜨게 된다. 한편 2학년 시기엔 항의 시위에 참여하여 구금됐다 훈방조치가 되는 등 이후엔 공법학과로 전공을 선택했다.

 

 

 

 

그리고 이어서 8년간 본격적인 운동권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 원희룡 후보. 그는 1984년엔 대학 동기들과 같이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 오거리에서 노학연대 데모를 위한 유인물을 퍼뜨리다가 경찰에 잡혀 유치장에 갇히기도 하여 구속당할 위기에 처하지만 당국의 주목 대상이 되어 몇차례 경찰 수배 대상으로 올라가기도 했다. 또한 이 시기에 야학과 노동운동에도 뛰어 들었던 원희룡 의원은 구로공단의 한 교회에서 여성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야학을 펼쳤으며 인천의 금속공장 등지에서 노동자로 위장취업을 하면서 하루에 2900원 수당을 받으면서 힘겹게 살아갔다.

 

 

 

 

한편 원희룡 국회의원 후보는 군입대 면제를 받은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병역면제에 대해서 알려진 후 논란이 불거져 왜 면제를 받을 수 밖에 없었는지 해명하기에 나서기도 했다. 당시 자신의 발가락을 인증하며 해명에 나선 원희룡 후보는 5살 때 부모님이 시장에 내다 판 물건을 실은 리어카에 올랐다가 리어카 바퀴에 발가락이 잘못 끼어서 거의 절단을 했었다고 하며, 결국 절단한 발가락을 봉합하다가 괴이한 모양으로 되었다면서 해명하였다. 그 당시의 제주 지역의 의료시설이 낙후되어 있었기 때문에 더욱 치료를 잘 받지 못하였고 이러한 사유 때문에 원희룡 의원은 정식 명칭인 전시근로역 판정을 받았다.

 

 

 

 

사법시험과 사법연수원을 거치고 검사 및 변호사로 활동해오다가 당시 한나라당의 당내 혁신 차원에서 이회창 총재의 젊은피 수혈로 1999년, 한나라당에 입당하여 본격 정계 입문을 하게 되었다. 바로 다음해 2000년에는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에 성공하였고, 차기 17대 총선에서는 탄핵 이후 상당히 위기속 치뤄진 선거였기에 당시 원희룡 국회의원은 생존한 몇 안되는 서울권 야당 의원이었을 정도로 당 지도부의 결정에 동요하지 않았고 잘못된 방식을 지속적으로 문제 삼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당 안팎의 거센 비난에 직면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양천구 목동을 구석구석 방문하면서 지역구 관리에 신경도 쓰고 민심을 살피면서 기반을 닦아 나갔다.

 

 

 

 

2010년 3월, 정치인생 10년을 내걸고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하겠다고 나섰으며 이후 같은해 7월에는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위원장직을 거쳐 한나라당 사무총장과 공천심사위원장, 최고위원을 거치면서 활발한 대중적 정치의 길을 걸어나갔다. 2014년에 열린 지방선거에서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제주지사에 출마하여 압도적인 득표율을 보이며 당선되었다. 2017년 1월 4일, 새누리당을 탈당한 동시에 개혁보수신당이자 바른정당에 입당하였으며 며칠 뒤에는 주목을 모았던 대선 불출마를 끝내 선언하였다.

 

 

 

 

2018년 4월 10일, 바른정당과 국민의당이 통합된 바른미래당에서 탈당한 원희룡 의원은 며칠후 제주도지사 재선 출마를 공식적으로 선언하였고 치뤄진 선거에서 상대 후보를 여유있는 득표차이로 당선된다. 2018년 9월 27일에는 선거법 위반 혐의로 경찰 소환 조사를 받았으며, 같은해 11월 30일, 결국 검찰에 기소되었다. 이후 원희룡은 결국 선거법 위반이 유죄로 인정돼 벌금형 80만원 판결을 선고받게 되었고, 벌금액이 100만원 이하였기 때문에 제주도지사직을 그대로 유지했다. 그리고 2021년 4월 21일에 열린 제주도의회에서 제주특별자치도지사 3선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향후 차기 대선 행보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을 열게 했다.

 

 

 

 

2021년 11월에 치뤘던 국민의힘 제20대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4위로 낙선하면서 대선 후보 출마에 실파하게 되었다. 이후엔 살리는 선대위에서 정책총괄본부장이라는 차기 정권의 밑그림을 그리는 자리에 올랐기에 만약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다면 국무총리나 주요부처 장관 등 여러 입각 내지 청와대 입성이 아주 유력시 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후로 점차 떨어지는 지지율로 인해서 살리는 선대위 본부장에서 내려오게 되었으나 며칠 뒤 후신 조직인 국민의힘 선거대책본부의 정책본부장으로 재차 임명되었다.

 

 

 

 

2022년 4월 10일, 윤석열 대통령이 1차 내각 인선을 발표하였고, 그 중에 전 제주지시를 지닌 원희룡을 국토부장관으로 임명했다. 2023년 12월 4일, 22대 총선 출마가 유력한 기존 장관들을 대거 교체하는 과정에서 원희룡 국토부장관 후임 후보자로 주택토지실장의 박상우 전 한국토지주택공사 사장이 내정이 된다. 그렇게 총선 직전에 원희룡 장관은 국토부장관직을 내려놓게 되고, 총선을 지휘할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12월 22일, 결국 1년 7개월 동안 수행해 온 국토교통부장관 자리에서 내려와 퇴임하였으며 당시 국토교통부 직원들에게 손편지를 주고 떠났는데 편지 속 내용 중에 '우리는 영원한 가족이다' 라고 남기고 떠났다. 이후 2024년 1월 16일에 열린 국민의힘 인천시당 신년인사회에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과 참여하여 계양구 을 출마를 시사하였고, 다음달 15일에는 계양구 을 후보로 단수공천되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같은 계양구 을 지역구에서 치열한 2파전으로 경쟁을 펼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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