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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윤항기 나이 프로필 목사 동생 윤복희 부인 가족 자녀 고향 학력 노래모음

by 얼굴은나의무기 2024. 6. 6.

 

 

가수 윤항기는 1959년 록밴드 <키보이스> 활동과 동시에 가요계에 얼굴을 알렸다. 키보이스는 '바닷가의 추억', '해변의 가요' 등 수많은 노래들을 히트시키면서 '한국의 비틀즈' 라고 불릴 만큼 큰 사랑과 인기를 얻었다. 이후 1974년에는 솔로 가수로 데뷔한 이후에도 '별이 빛나는 밤에', '장밋빛 스카프' 등 곡을 연이어 히트시키면서 한국 가요사에 큰 축을 담당하였고, 큰 업적과 명성을 쌓았다. 또한 가수 윤복희의 오빠로도 많이 알려져 원조 '국민남매' 라는 애칭을 불리기도 했다.

 

 

 

 

윤항기 프로필

 

나이 : 1943년 9월 15일 출생. 80세

고향 : 충청남도 보령시

가족 : 부인 정경신, 자녀 아들 윤준호, 여동생 윤복희

학력 : 연세대학교 종교음악과 학사 - 미국미드웨스트 신학대학교 신학과 학사 - 미국 트리니티 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교회음악학과 음악학 석사 - 미국 트리니티 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군대 : 해병대 병장 만기 제대

데뷔 : 1959년 '정든 배'

현직 : 예음예술종합신학교 총장, 한국기독교연합회 명예회장, 한국예술사관실용전문학교 학장, 한국전통문화예술협회 고문

 

 

 

 

가수 겸 목사로 활동하고 있는 윤항기는 1943년 9월 15일 충남 보령시 지역에서 태어났고, 1959년도에 작곡가 김희갑이 단장으로 있는 에이원쇼를 통해 가수로 데뷔했다. 18살이 되던 1960년에는 해병대로 입대하여 군악대 사병으로 복무하였으며, 전역 이후인 1964년에는 최초의 록 그룹 밴드 <키보이스>를 결성하여 활동하면서 여러 히트곡을 발매했다. 그렇게 그룹 키보이스의 멤버로 활동하다가 1974년 솔로로 나서 데뷔하였고, '별이 빛나는 밤에', '장밋빛 스카프', '나는 행복합니다' 등의 히트곡들을 남기면서 솔로가수로 성공하였다. 1975년 영화 <나는 어떢하라고>에도 출연하며 연기 활동도 잠시 보여주었다.

 

 

 

 

1986년에는 돌연 가수 활동을 중단한 뒤 미국으로 건너가 신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이후 가요계를 잠시 떠나 목사 활동을 본격적으로 하였꼬, 그 때문인지 현재도 한국기독교연합회 명예회장을 맡고 있을 정도로 종교계에서 높은 인지도를 쌓았다. 2014년에는 목사 정년인 만 70세 제한 때문에 예음교회 담임목사직에서 물러나 다시 가수 활동을 시작했으며, '걱정을 말아요' 등의 곡을 발표하면서 계속해 가수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윤항기는 최근 <속풀이쇼 동치미>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손주 유치원비를 내주게 된 에피소드를 공개해 눈길을 끌었다. 이날 윤항기는 "손주가 유치원을 다녔는데 단짝친구가 영어유치원으로 옮긴거다. 자기 엄마랑 아빠는 영어유치원비가 비싸니 말을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손주가 '할아버지' 하면서 우는데 그걸 어떻게 내가 모른척 하나" 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이어 "그게 다가 아니다. 하나가 가니까 둘째도 같이 따라간다" 라면서 손주들 유치원비를 내줄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했다.

 

 

 

 

한편 윤항기는 과거 시한부 선고를 받기도 했었는데, MBN <최불암의 이야기 숲 어우림> 방송에 출연한 윤항기는 부인 정경신 씨와 결혼하기 위해 "처가에서 아내를 데리고 야반도주까지 감행했다" 라며 힘겨웠던 결혼 생활에 대해 털어놨다. 이어그는 "이후 노래가 히트하면서 가난한 생활을 청산해 나갔고, 하루에 2백, 3백을 벌었지만 인기에 취해 가정을 등한시 했다. 그렇게 가는 곳마다 돈을 펑펑 써가면서 하루하루를 지냈고, 평생 인기가 이어질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 라며 지난 날을 회상했다. 그리고 이어 "그러던 어느날 시상식장에서 쓰러졌고, 병원에서 폐결핵 말기로 6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혹여나 폐병이 옮을까봐 지인들이 주위에서 다 도망갔고, 그제서야 부인이 가장 먼저 생각나더라. 그리고 아내의 극직한 보살핌 속에 기적적으로 완치되어 살아났다" 라고 고백했다.

 

 

 

 

윤항기 윤복희 남매는 과거 서울 청계천 거지생활을 하며 지냈었는데, 윤항기는 <여유만만>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청계천 고아에서 한 시대를 퐁미하는 가수로 성장한 인생사를 털어놓았다. 이날 방송에서 윤항기는 "아버지는 방송계에서 굉장히 유명했다. 동생 윤복희와 나는 공연을 다니시는 부모님을 따라 이른바 유랑생활을 하며 지냈고, 그러다 내가 10살 때 갑자기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2년 뒤 아버지도 심장마비로 돌아가셨고, 이후 동생하고 나는 돈도, 갈 곳도 없었다. 결국 동생과 나는 청계천으로 향했고, 당시 한국전쟁 이후 청계천에 많은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몰려 있었다. 청계천 시장 좌판 아래서 잠을 청했고, 겨울에는 청계천 다리 밑에서 거지들과 같이 생활하기도 했다. 당시 청계천 옆에 세워진 교회에서 생활하게 되기전까지 윤항기와 윤복희 두 남매는 청계천 거지였다" 라고 고백했다.

 

 

 

 

한편 윤항기는 폐결핵 말기 진단에 이어 부인은 식도암 말기로 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다행히도 수술을 받은 뒤 다 나았으나 그 이후로 조금만 힘들어도 피로가 찾아온다고 밝혔다. 그리고 윤항기 부부는 손주들을 주로 케어하며 황혼 육아를 하면서 보내고 있으며, 예전 <아침마당> 프로그램에 출연한 윤항기는 "순주와 같이 산지 14년이 흘렀다. 아이가 태어났을 때 정말 예뻤다. 칭얼대면 안아주고 달래주고 기저귀도 갈아주고 우유도 먹여줬다. 아이가 기어다니고 걷고 다니니까 둘째가 또 태어났다. 그러다 보니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아내와 보낸 것 같다" 라고 말했다.

 

 

 

 

윤항기의 무녀독남 외동아들인 윤준호는 아버지와 고모인 윤복희처럼 CCM 가수로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여담으로는 윤항기가 한때 192센치의 거한이라는 루머가 돌았으나 실제로는 175센치 정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시대적 배경과 나이를 고려하면 175센치도 상당히 키가 큰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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